제47대 총학 선거가 막을 올린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알록달록한 선본옷에 무수한 리플렛을 보니, 이들도 총학생회장을 하고 싶은가 보다. 의욕에 불타는 선본들이 넷이나 나왔다니 내년 학생 사회는 고등학교 시절 ’옆반’처럼 잘 돌아가겠지 하는 기대도 해본다. 서로 내외하던 우리 반과 같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그들이 왜 총학생회장을 하려고 하는가다. 소통이니, 연대니 하며 내세운 공약을 실천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출마했다면 더욱 바랄 게 없지만, 지금의 총학 선거를 보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우선 ’네가 못마땅하니 내가 해야 한다’는 식의 행태는 서울대 학생정치사에 획을 긋는 신 개념 전략으로 평가된다. 어떠한 절차를 거쳐 총학생회 집행부에 당내’?’ 경선이라는 제도가 도입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책 논의는 뒤로 한 채’무관심을 설레임으로’ 바꿨다는 현 총학의 승계자임을 자처하는 일부 선본의 모습은 유권자들의 실망을 자아냈다. 또한 출마의 변에 나타난 어엿한 신념이 구체화되지 않은 채 ’구호’에 머물러 있거나, 포퓰리즘 식 공약을 제시하는 선본도 눈에 띈다.
지난 3일 공동 선본발족식의 썰렁한 분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학생’회’를 하겠다면서, 모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는지’를 말하는 선본은 보이지 않는다.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의 ’조직표’ 승부의 승자가 대표성 있는 학생회장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대학도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하면, 학생들끼리 뭉치는 데에는 뭔가 공통된 ’이해’나 ’의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탄스러운 시국에 대한 대학생의 의무로 학생들이 모일 수도 있고, 학생 사회 내부의 한 의사소통 기구가 필요하다는 이해에 따라 학생들이 모일 수도 있다. 선본의 조직력, 후보들의 카리스마 등의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학생들의 공통된 이해나 의무가 무엇인지 가장 잘 판단한 선본이 수권하는 것이 당선자를 위한 학생회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를 낳는 길일 것이다.
쓴소리를 늘어놓았지만, 학과ㆍ반 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가 침체의 늪에 빠진 형국에서 총학생회장 후보들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그러나 후보들이 학생을 위한 학생회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상대 후보 비방식 선거전략이나 포퓰리즘성 공약 남발을 중단하고, 정책을 통해 ’왜 내가 돼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좋은 학생회를 만들어보겠다고 열심히 뛰고 있는 후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한 ’철새’ 정치인이 - 철새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 탈당에 복당을 거듭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래의 정치 지망생들에게 몇 자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