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훈

1.

내가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두려움 내 속에서 나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나에게 달려든다 나를 삼키면 나는 사라지고 마는 걸까 아니면 두 배의 몸집을 갖게 될지도 허기진 나와 타협을 하도록 한다 내가 죽으면 나의 전부를 줄게 나의 영혼까지도 나에게 줄게 나는 내가 되는 거야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공허로 허기는 점점 커져간다 나를 실족케 하여 나를 삼키려 하는 나 나는 나를 입안에 삼켜 따스한 피를 맛보기를 갈망하며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 사실 나는 벌써 몇 번째 삼켜진 나일지도 몰라

2.

나는 나를 복제한다 지금의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나는 뻔뻔하게도 과거의 나의 모습과 말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체계를 도둑질한다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닌데 지금의 나는 다를 것이 없다 철저하게 카피당한 나는 나를 카피하고 있는 나를 경멸한다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세상에서 나는 나에 대한 향수에 젖어 나를 끊임없이 모방한다 황금에서 시작하여 백은과 청동과 영웅은 제끼고 이제는 철에 다다른 나 문득 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고 악수를 청해보지만 저런 어떤 나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아닌 거울의 나들이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형편이다 거울은 나를 비추고 나는 거울을 비춘다 무한히 펼쳐지는 나의 무리 중 어느 나에 점을 찍어야겠소이까 점심은 건너뛸 수밖에 나는 데칼코마니마냥 대칭성을 이루고 얄팍하고 천박하게 종이에 반으로 접힌 채 박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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