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훈 (국어국문학과·00)

여러 번을 떨어졌었다. 졸업하기 전에 붙게 되어 기쁘다. 혼잣말로 나와 나 사이에 이루어지던 내밀한 글이 『대학신문』을 빌려 소통하게 된다니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종교학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지만 내심 국문학과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종교와 문학 사이에서 실족치 않으려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다.

어렸을 적 낮잠을 자다가 밤에 일어난 적이 있다. 희미한 어둠이 창밖으로 보였다. 지금이 밤일까 낮일까. 어두워지려 하는 것일까 해가 뜨려 하는 것일까. 가방을 싸고 학교에 가려던 나는 그제야 밤인 줄 깨닫고 약간 무서웠다. 시작조차 하지 않은 하루가 끝나가려 해. 요즘 아침 늦게 일어난다.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데 아직도 하루가, 그리고 인생이 이만큼이나 남아있다니.

해가 질 무렵 헌책방 앞에 수없이 쌓인 책더미 위에 한 소녀가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다. 소녀의 뺨에 붉은 석양이 어린다. 그 애 앞에서 기도를 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웃음소리. 솩.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비웃음을 받아도 싸지. 갈 수도 멈춰설 수도 없는 길 위에서 내가 찾는 건 무엇일까.

여러 갈래로 갈린 길 중에서 어린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목자는 자신이 걷는 길에 양이 있으리란 걸 믿어야 한다. 길은 다른 모든 길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사실 스스로가 걸어 나가는 길은 태초부터 나를 위해 준비된 유일한 길일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너를 보려 한다. 체셔 고양이 같은 붓다의 조소도 받아가면서. 지지 않고 나도 웃어주리라. 그때 너도 웃어주었으면 한다.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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