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보건안전을 짚는다-「실험실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세미나」,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

최근 폭발, 화재로 인한 실험실 안전사고 외에도, 실험자들이 유해한 화학물질이나 미생물에 노출돼 잠재적 질병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실험실 보건에 대한 논의가 주목받고 있다. 95년 서울대 화학과, 제약학과, 화공학과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실험실에서 소규모의 폭발, 화재, 외상 등을 경험한 비율은 44%인 반면 화학물질로 인해 피부발진, 두통, 급작한 위통, 현기증 등을 경험한 비율은 86%나 됐으며, 지난 9월 한 싱가포르의 사스감염자는 실험실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보건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실험실 보건안전 문제에 관한 두 차례의 세미나가 열렸다.

 


지난 6일(목)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주최한 「실험실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세미나」에서는 실험실 보건안전 문제와 관리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사회를 맡은 최경호 교수(보건대학원)는 “실험실 연구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을 검토하고 과학기술부가 2004년 제정하고 있는 ‘연구안전환경조성에 관한 법률’에 보건문제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세미나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실험실 연구자의 보건문제」를 발표한 백도명 교수(보건대학원)는 “실험실 폭발 사고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빙산 밑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상당하다”며, “발암물질에의 노출로 인한 잠재적 발암현상, 유기용제 등 화학적 자극에 의한 비가역적 신경 손상, 세균성 감염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위협이 간과되기는 쉬우나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48년부터 67년까지 실시한 미국 화학자들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일반인에 비해 암에 걸려 사망한 사람이 1.2배 많았으며, 조혈기관 암의 경우 1.7배나 많았다. 그는 “이러한 실험실 보건안전 문제가 각 기관의 시정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별로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보건안전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개인의 조심성에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안전문제에 대한 사회적 접근 필요


윤충식 교수(효성가톨릭대ㆍ산업보건학)는 「실험실 유해요인의 인식 및 관리」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을 비커에 담아 무방비 상태로 이동하면서도 수 년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한 한 대학 교수를 예로 들며, 실험자들이 유해요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유해물질안전보건자료, 유해물질 위험 표기, 실험자 교육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실험실 종사자의 알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대학의 실험실 보건안전관리 프로그램」을 발표한 박정임 박사(보건환경연구소)는 “미국 대부분의 대학에는 실험실 보건안전에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인 EHS( Environment, Health, Safety)가 있으며, EHS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 대학의 실험실은 정기적인 실험실 보건안전관리 점검, 비상시 대응 훈련, 실험실 보건안전 교육 등을 실시한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재단 및 정부기관 등에 연구비를 신청할 때 실험 환경이 안전한지 여부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연구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경우 효과적일 것이라 전망했다.


WHO 안전기준에 맞는 실험실 극히 드물어


이에 앞서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용씨(의료관리학 박사과정)를 비롯한 7명의 연구자가 「우리나라 미생물 실험실의 생물안전현황」을 발표했다. 미생물 실험실은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전염성 미생물을 취급하므로 이를 통한 감염의 가능성이 높으며, 실험실 감염이 지역사회로 전파될 경우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이에 WHO에서는 미생물을 위해도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누고 각 실험실이 취급하는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그 실험실의 생물안전등급(BSL)을 1~4등급으로 설정해 실험실을 관리할 것을 각 나라에 권고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기준에 따라 전국 563개 미생물 실험실을 대상으로 취급하는 미생물 종류를 조사해 BSL 등급을 매기고, 각 등급에 따라 실험실 관리가 적절하게 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개인보호장비, 생물안전을 위한 설비, 실험실ㆍ검사실의 구조, 전반적 실험적 관리, 생물안전보장의 6개 영역을 21개 설문문항을 통해 조사했다. 그 결과 21개 항목을 모두 충족한 기관은 1개 기관뿐이었으며 전체 기관의 설문 문항 평균 충족률은 56.2%에 불과했고, 특히 개인보호장비와 실험실관리 부문의 생물안전수준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진용씨는 “20세기 말 사라졌던 전염병들이 재등장하게 된 진원지도 실험실”이라며, “아직 우리나라에서 미생물 실험실 관련 감염 보고가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생물 실험실의 BSL 등급에 맞는 안전관리 지침을 보급, 교육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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