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보성, 벌교 출신 시민들이 ‘황산벌’이라는 영화가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경찰에 고소하는 사건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보성, 벌교 출신의 백제군에게 신라군이 “저 놈들은 태어날 때부터 욕을 한다”고 말한 장면이 이 지역 주민들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매도했다는 것이 고소장의 요지였다. 감독이 고소인들을 만나 사과하고 영화를 비디오로 출시할 때 ‘영화의 내용이 특정 지역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내용의 문구를 넣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고소는 취하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지역 출신들이 태어날 때부터 욕을 한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터이다. 또 욕이 꼭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환기시키는 것은 아니다. 기쁨이나 반가움을 욕설로 표현했던 것은 서민들의 오랜 전통이다. 어떤 이는 뛰어난 언어감각이 담겨 있는 욕설이나 은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욕설은 허위에 가득 찬 지배층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청량제 구실을 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욕을 해대는 그 지역 출신 인물 ‘거시기’는 민중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이처럼 욕설은 얼마든지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고소라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은, 수많은 조폭 영화를 통해 욕설이 지닌 부정적 인식만이 확산된 탓이다. 그러니 이 작은 소동은 출신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은데다 작품에 깊이 몰입할 만큼 감성이 풍부했던 몇몇 시민들이, 욕설의 긍정적인 면모가 훼손되어 가는 현실에 분연히 맞섰던 사례쯤으로 기록해도 될 듯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한국사의 가장 비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파괴하고 우스개로 만든 ‘非국민적, 反역사적’ 행태를 보여 주었다는, 어느 언론인의 평가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는 이 영화의 제작자들이 자기 역사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신화를 짓밟고 애국심에 찬물을 끼얹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황산벌 전투는 한국 군사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며, 그 이후에 한국사에서 실종된 武士道와 男性美의 현장감이라는 것이다. 그런 역사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 어린 학생들의 머리를 혼란시킨 이 영화제작자들은 민족사적 범죄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풍자의 대상은 풍자에 저항하고 웃음을 폄하하는 법이다.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형식을 통해 사대주의, 전쟁의 논리, 남성의 명분주의 등을 풍자하고 있다. 이 영화의 웃음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은 것은, 명분을 구실로 폭력과 굴종을 정당화하는 우리의 현실을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화로 간직해야 할 것은 명분을 구실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살기등등한 무사도보다는, 한 사람의 생명도 소중히 보듬는 평화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 이름 때문에 사람이 죽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을 살려 이름이 남는 역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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