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천 영어교육과ㆍ06

이런 대학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학생들이 등록금을 전혀 내지 않는 대신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모두 직접 제공한다면? 학생들이 자신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조리하고 강의실을 짓는 등 진풍경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과연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마도 ‘아니오’일 것이다. 학생들이 등록금을 낸다는 것은 단순히 대학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납부함으로써 자신들의 시간을 학교 운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서 학생들은 대학생활을 보다 충실하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자꾸만 오르는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과외를 감당해야 하고 언제 더 오를지 모르는 등록금이 두려워 하루 빨리 학교를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학우들이 있다. 더 나아가 등록금을 낼 수 없어 부담되는 이자에도 할 수 없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이 내쉬는 한숨은 학교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등록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등록금 인상 과정에서 등록금 부담을 최소화하거나 학생들의 불신을 줄이려는 본부의 노력도 학생들에게는 흡족하게 느껴지지 않아 안타깝다. 학생들의 경제적인 사정을 고려한 장학금 제도가 미비할 뿐 아니라 그 심사과정이 매우 허술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형태로 시행되고 있는 현실은 ‘학업을 장려한다’는 장학금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논란이 된 등록금 인상 과정의 비민주성 문제도 대학당국과 학생들 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본부는 학생들과 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과 발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서울대가 세계 대학으로 발돋움하고자 쏟는 혼신의 노력은 존중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위해 학생들의 요구를 계속 외면할 뿐 아니라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을 대학의 재정확보와 무조건 연결시키려는 입장은 대학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퇴색시킬 수 있다. 서울대가 학생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의 동반자로서 서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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