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추리소설 다시보기 - 하드보일드형 추리소설

하드보일드형 추리소설은 건조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챈들러는 60년대 나의 영웅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하드보일드형 추리소설의 대가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과 대실 해미트의 『말타의 매』 등을 통해 하드보일드형 추리소설을 알아보자.

◆하드보일드형 추리소설(하드보일드)의 등장=1920년대 후반, 미국에서 하드보일드 장르가 새롭게 등장했다. 1929년 대실 해미트가 『붉은 수확』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하드보일드형 추리소설은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등이 가세하면서 하나의 장르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태도와 냉정한 문체로 사실을 묘사하는 기법을 가리킨다. 이 기법은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용한 것으로 그가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 익혔던 건조한 기사체를 문학에 접목시켜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가 백휴씨는 하드보일드 수법에 대해 “주어와 동사로 이뤄진 가장 단순한 구조여서 깔끔하고 명확하다”며 “독자 입장에서 보면 읽기 쉬운 문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쓰기 어려운 문체다”라고 평했다.

◆앉아 있는 탐정에서 행동하는 탐정으로=퍼즐미스터리의 탐정이 ‘안락의자형’이었다면 하드보일드의 탐정은 ‘행동하는 탐정’이다. 퍼즐미스터리에서는 탐정이 사건 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간접적인 증거들을 수집해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추리 과정과 방법이 중요하다. 하지만 하드보일드에서는 탐정이 현장에 뛰어들어 사건에 직접 부딪치기 때문에 추리 방식보다는 생생한 현장감이나 탐정과 주변 인물 간의 인간관계 등이 더욱 중요시된다.

탐정의 계급에도 차이가 있다. 퍼즐미스터리의 셜록 홈스나 에르큘 포와로가 부르주아라면 『말타의 매』에 나오는 샘 스페이드나 『안녕 내 사랑』의 필립 말로는 프롤레타리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홈스가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동급이거나 더 위에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입장인 반면, 샘 스페이드는 댄디 경감에게 범인으로 의혹을 받는 등 공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수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유색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초기 하드보일드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잘 드러난다. 인디언, 흑인, 아시아인 등은 범죄자거나 범죄자의 조력자이고, 이들이 선한 역할을 맡게될 경우 대개 조연급에 머문다. 추리문학 평론가 장경현씨는 “초기 하드보일드에는 부패한 사회 상층부의 모습을 비판하는 등 성장한 대중의식이 드러나 있지만 시대적 한계 때문에 유색인종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편이다”라고 답했다.

여성을 주로 팜므파탈(Femme Fatale)로 재현하는 것도 하드보일드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다.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를 유혹하는 오쇼네시와 그레일 부인 등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백휴씨는 “탐정들은 이런 여성들과 성적인 접촉을 즐기지만 결국엔 이들을 뿌리치면서 사건을 해결하고 자신의 존재를 재확립한다”고 말했다. 성적 매력을 가진 여성은 남성을 타락으로 이끄는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탐정의 한계=장경현씨는 “퍼즐미스터리는 부르주아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 흐트러졌던 기존 질서를 회복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만 하드보일드는 프롤레타리아 탐정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고 말했다. 하드보일드에서는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도 이미 타락해 버린 사회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지는 못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느끼고 그것을 개선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를 거스를 수 없다.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추리나 해결이 아닌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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