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세계일주를 한 것은 2000년 1월이었다. 새 천년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서울을 떠나 미국의 서부로 갔다. 그리고 뉴욕, 런던을 거쳐 리사본까지 갔다. 오는 길에는 독일을 거쳐 필리핀에 들렀다. 1월 12일에 떠나 2월 19일에 서울로 돌아 왔으니 38일의 세계여행이었다.

 

미국은 동부부터 갔다. 79년 12월이었다. 유학생활을 하던 독일에서 갔다. 그리고 20년 뒤에야 서부에 갔다. 동부와 서부의 일부, 말 그대로 미국의 껍데기만 보고 왔다. 속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와 달리 유럽은 속부터 보았다. 파리와 베를린,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의 속이다. 그렇다면 나는 미국의 껍질에 유럽의 속을 채운 셈이다. 유럽은 동쪽으로 러시아가 있어 횡단, 가로지르기는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실패한 길이다. 종단, 세로지르기가 편하다. 독일의 뮌헨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노르웨이의 나르빅과 로포텐 섬 그리고 남으로는 시칠리아의 시라쿠사까지 갔다. 96년 여름이었다.

 

높은 곳에 오르기로서의 세로지르기는 히말라야 산맥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처음 체험했다. 2002년 7월이었다. 2003년 5월은 에베레스트 봉우리에 인간의 발자국이 처음 새겨진 지 50년 되는 해다. 지난해 10월에는 그 산의 베이스 캠프까지 갔다. 해발 5300미터의 높이였다. 관악산과 북한산에서 닦은 실력으로도 12박 13일의 트래킹은 힘들었다.

 

그런 다음 시도한 것이 80일 간의 대륙횡단이었다. <독일에서 티벳까지, 6월 6일부터 9월 9일까지>가 표어였다. 인문인으로서 아시아 대륙을 발견한다는 야심을 가지고 도전했다. 인문학의 길은 서울과 독일까지의 직항항로와는 다르다. 인문학은 다양한 길의 발자취다. 『서동시집』에서 어우러진 사람이 독일의 괴테와 페르시아의 하피스(1326~1390)다. 괴테의 나이 이미 일흔 살이었다. 하피스가 활동했던 이란의 시라즈에 이번 여행에 들렸다. 뛰어난 인문인인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을 썼다. 그도 시라쿠사까지 갔다. 또한 그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수업시대」를 탈고한 뒤 25년만에 쓰기 시작하여 8년 동안 그 작업에 매달렸다. 작업을 끝냈을 때는 어느덧 그의 나이 여든이었다. 인문인의 길은 그런 것이다. 독일과 유럽을 떠나 아시아의 대륙을 횡단, 인도의 다람살라까지 떠돌이로 움직이면서 나도 뒤늦게 비로소 그것을 짧게 체험해봤다. 다람살라에는 달라이 라마와 티벳사람들이 산다. 끝으로 여행시를 두 편 붙인다. 제목이 「아시아는 시다」, 부제는 「산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다른 한 편은 「달라이 라마의 초상화」다.

ㅏㅣㅣㅣㅣ
ㅣㅣㅣㅣㅣ
ㅣㅣㅅㅣㅣ
ㅣㅣㅣㅣㅣ
ㅣㅣㅣㅣㅏ


라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난나라

 

고원 인문대 교수ㆍ독어독문학과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