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개헌을 위해서는 폭넓은 토론 필요 학자·국회·시민사회 모두가 논의해야

송석윤
법대 교수·법학부

대통령이 4년 연임제 헌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후 실시한 여론조사는 흥미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개헌 자체에 대한 찬성 여론과 현 정권에서의 개헌 반대 여론이 동시에 절반을 넘으니 개헌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론의 추이를 지지도가 낮은 임기 말의 정권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못 된다. 
 
우리나라의 헌법학자와 행정법학자들을 대표하는 모임인 한국공법학회에서 2005년 초에 회원들을 대상으로 헌법개정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정부형태에 대해서는 대통령제, 그 중에서도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헌법개정의 필요성이 불필요하다는 견해 역시 절반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의 이면에는 헌법개정이 정략적으로 이용되었던 우리의 헌정사 경험과 헌법은 제도 자체보다는 운영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는 생각이 있다고 본다.

헌법개정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커다란 행사다. 이른바 ‘원 포인트’개헌안은 사람을 잔치에 초대해 놓고 밥, 국, 김치만 내놓는 격이다.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기보다는 통치의 편의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국민이 기뻐할 리 없다.

4년 연임제 개헌이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리라는 보장도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통령이 재선되기 위해 임기 초부터 인기에 영합하는 단기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선거에 관권을 동원하고도 재선에 실패하는 상황이다. 4년 중임제의 모델인 미국의 경우 1837년부터 1897년까지 60년 동안 모두 16명의 대통령이 재직했다. 이 중 연임에 성공한 경우는 남북전쟁과 전후복구라는 비상시에 대통령에 재직했던 링컨과 그랜트뿐이었다. 동일한 대통령제라도 행정부와 의회 및 정당의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다르게 기능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적지 않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개정에서 대통령보다 커다란 헌법적 권한을 지닌 국회에서 논의의 장조차도 열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 정부가 개헌안을 내놓기 이른 데에는 국회의 책임도 적지 않다.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바람직한 헌법개정논의 방식은 시민사회가 폭넓게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국회에 여는 것이다. 여야가 합의하여 국회에 현역 국회의원의 임기를 넘어 최소한 2년 이상 활동할 수 있는 헌법연구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안은 철회하기를 바란다. 정치권이 정권을 향해 경쟁하는 동안 시민사회가 지난 20년 동안의 내·외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 앞에서 나아갈 방향을 폭넓게 토론하는 것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안 철회의 조건으로 차기 대통령후보에게 개헌의 공약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헌법개정은 대통령의 권한을 넘으므로 후보가 약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민주헌정의 오랜 경험을 지닌 국가들 중 비교적 최근에 헌법을 개정한 예로 스위스를 들 수 있다. 1874년에 제정된 연방헌법을 전면개정하기로 1965년에 결정한 이후 34년 동안 논의를 거쳐 1999년에 새로운 헌법이 통과되었다. 스위스의 신헌법은 특히 기본권조항에서 21세기 헌법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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