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청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자연(自然)은 자연(自然)스럽다(Nature is natural). 이 말이 동어반복처럼 느껴지는가?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은 어떤 선입견을 품고 이 문장을 읽는 것이다. 바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자연이라는 선입견.

여기서 자연스럽다는 술어는 자연을 닮았다는 말이 아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항상 변함없이 한결같고 그래서 가장 확실하고 또 이치에 잘 맞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자연스럽다’는 말은 최종심에 배석한 판사의 말과 같다. ‘자연스럽다’가 선고되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마땅해지며 정의의 기준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연은 언제나 한결같지도 않았고 또 무엇이 진정 자연스러운 것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18세기 스위스 의학자 티소는 오나니슴을 비판했다. 신경과 근육이 자극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당시에 알려지자 신경은 육체와 영혼의 중요 전달 경로로 인식되었다. 만약 이 신경관을 욕망이나 헛된 상상이 차지해버리면 질병이 생긴다. 자위행위를 버릇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자연적인 법칙을 어기고 신경관을 영혼 대신 욕정으로 채우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연적 형벌’을 받게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인체의 자연적 법칙과 의학 지식을 위반한 이들이 죽는 것은 그래서 “정의로운”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아무도 자위행위 하는 사람이 앓아서 죽는 것이 자연적 법칙이고 또 정의롭다고 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것은 변했다.

자연스러운 것과 자연은 사실 다르다. 자연은 늘 다르게 표상되어 왔다. 자연은 양육의 반대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의 반대로, 기술의 반대로, 문화의 반대로, 초자연의 반대로 이해되었다. 자연의 일부인 꿀벌에게서 자연적 덕성을 끌어내기도 하고 환경의 재앙을 자연의 응보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연은 늘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를 포함하는 대상이었지, 언제나 한결같이 ‘자연스러운’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자연의 권위를 높이 세우면 세울수록 자연을 대리하는 과학의 권위도 올라간다. 그러면 과학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드러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학문이 된다. 사람들은 늘 자연을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상정한 다음 거기에서 자연스러움을 유추해낸다. 자연을 확실하고 중립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나중에 자연에서 가져오는 자연스러움의 가치는 더 커진다.

한 경제평론가는 그의 책에서 “자본주의가 정의롭다는 사실은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과감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이 진화심리학이라는 ‘자연스러운 학문’과 인간의 본성이라는 자연에 기초해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실 내게는 자본주의가 정의롭다는 주장보다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이 더 과감하게 보였다. 아직도 그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에 높은 권위를 주고 바로 그 권위를 이용해서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움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자연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가두어 두고는 필요할 때마다 거기에 나름의 ‘자연스러운’ 성질을 부여한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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