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통일국가가 아니라 정복국가”라며 기존 학계와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 책이 나왔다. 기존의 한국사 서술에 따르면 한반도 내부에서 벌어진 고대 전쟁은 같은 민족 사이의 ‘통일 전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신라는 백제·고구려와 연합하거나 이들 나라를 통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정복한 것”이라고 말한다. 신라의 관등제도는 가장 높은 1관등에서 가장 낮은 17관등까지로 이뤄졌는데, 백제인에게는 11관등, 고구려인에게는 7관등까지만 허용하는 등 신라는 피정복민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저자인 이기봉 연구원(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같은 민족은 아니다”며 “만약 같은 민족이라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기회를 부여했을텐데, 신라는 백제·고구려민을 형식적·실질적으로 철저히 차별했기 때문에 정복국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 책은 “신라의 수도 경주는 학자들이 짐작해온 것보다 훨씬 크다”고 설명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전성기의 경주에 17만 8946가구가 있었다는데 기존 신라사 연구자들은 이를 잘못된 기록이라고 본다. 조선의 한양도 4만~5만 가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기봉 연구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가 증가한다는 법칙이 과거에도 성립한다는 근거는 없다”며 “17만 가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기존의 연구는 경주가 사방 약 5.5킬로미터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현장답사로 경주의 지리적 환경을 연구해본 결과 경주는 그보다 훨씬 넓었다는 것이다. 또 근래 경주 외곽에서 실시된 발굴사업 결과 토기와 기와를 만드는 ‘요지(窯址)’가 조선의 한양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많이 분포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당시 경주의 인구 규모가 기존학자들이 짐작한 것보다 더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기존의 신라사 연구를 반박하며, 역사지리학적 시각으로 신라사를 새롭게 해석한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은 많은 관심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연구원은 “민족주의는 학문의 적”이라며 “내가 민족주의를 꺼려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 했기 때문에 계층 간의 ‘차별’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고, 신라가 한 민족을 통일한 국가가 아니라 다른 민족을 정복한 국가라는 생각에 이를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노태돈 교수(국사학과)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는 개인적인 주관일 뿐”이라며 “명확한 근거 없이는 학계의 공감을 이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