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인문학 선진국 독일 학문의 힘

연구자 양성과 하빌리타치온 논쟁 

독일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교수자격논문인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을 통과해야 한다. 박사논문이 주로 연구자로서 필요한 내용을 평가한다면 하빌리타치온은 교수로서 남을 가르치는 능력과 독창적인 생각을 평가한다. 비루스 교수(뮌헨대ㆍ독문학)는 이런 엄격한 자격을 거치는 것이 독일 대학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재정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 없지만, 엄격한 교수  자격 심사로 독일 대학교수의 수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 비해 많지 않다. 대신 독일 대학은 조교나 대학 내의 연구원이 많다. 강사는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부터 맡게 되며, 하빌리타치온을 획득한 경우 사강사(Privatdozent)가 돼 대우가 높아진다. 교수가 되면 평생 직장이 보장되지만 이것이 쉽지는 않다. 교수가 되면 처음부터 자신이 나온 대학의 교수로 부임할 수 없고 일정 기간 다른 대학을 거쳐야 한다.

 


독일에서도 대학 졸업 후 교수가 되기까지 연구자들의 처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우선 교수가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석사과정에 해당하는 마기스터나 디플롬을 획득하는 나이는 평균 28세이며, 박사학위를 따는 데 4~5년, 박사과정 후 하빌리타치온에 통과하는 데 4~5년이 걸린다. 하빌리타치온 통과 후에도 정교수 발령까지는 시간이 걸려 40대 중반이 돼서야 교수가 될 수 있다.

 


하빌리타치온으로 인해 교수가 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지적 때문에 독일에서 하빌리타치온 개혁은 중요한 논쟁 중 하나다. 젊은 학자들이 더 자율적인 위치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효과도 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하빌리타치온 없이 교수 지위를 주는 주니어 프로페서 제도이다. 물론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비루스 교수는 “공학처럼 지식의 흐름이 빠른 학문에서는 주니어 프로페서 제도가 의미있겠지만, 인문ㆍ사회계에서는 하빌리타치온과 같이 한번 더 걸러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 속에 주니어 프로페서 제도의 실행은 미진한 편이다. 독일 당국은 장차 주니어 프로페서로 신임 교수를 뽑는 비율을 50%에까지 늘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주니어프로페서를 정식 교수로는 채용하지 않고 계약직으로 뽑고 있는 상황이다.

 


경쟁체제 도입 (성과급, 평가)

한-마이트너 연구소 홍보부 로베르손 실장은 “최근 독일에서도 두뇌유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이후 연구원이 돼서는 독일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이다. 이는 금전적인 문제와 연구 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에 독일은 최근 공무원법을 개정해서 성과급 개념의 도입을 구상 중이며, 니더작센주의 괴팅엔대와 하노버 수의대 등이 올해부터 일부 교수를 대상으로 성과급 제도를 도입했다.

 


아울러 연구와 교육에 대한 평가도 강화할 계획이다. 콘라드 교수(베를린자유대ㆍ역사학)에 의하면 연구 평가는 “각 교수가 끌어오는 연구 보조비와 논문으로 평가할 계획이지만 완전히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SCI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으며, 독일어로 쓰는 논문 중에서도 의미있는 논문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연구소

대학과 함께 독일의 연구를 책임지는 또 하나의 축은 막스플랑크 재단이나 헬름홀츠 재단과 같은 연구소이다. 이들은 주로 자연과학 연구를 맡고 있으며 막스플랑크 재단의 경우 역사학, 법학과 같은 학문 분야를 연구하기도 한다. 이 연구소들은 예산의 90%이상을 국가에서 지원한다. 헬름홀츠 재단 아래에는 한-마이트너를 비롯 16개의 연구소가 있는데 예산이 무려 21억8천만 유로에 달한다. 막스 플랑크연구소의 경우 80개의 연구소가 속해 있으며, 이중 16개의 연구소는 동독지역에 세워졌다. 또 이탈리아, 네덜란드에도 연구소를 세울 정도로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들 연구소들은 기초과학 연구를 넘어 산학협동이나 기술이전에도 적극적이다. 이 외에도 기초과학보다 응용연구 중심의 프라운호퍼연구소와 라이프니쯔 연구소도 국가의 지원아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소들의 운영에 있어 정부의 간섭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막스플랑크 역사학 연구소의 뤼트케 교수(에어푸르트대ㆍ역사학)는 “단기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가 이루어지는 대학과 달리 안정된 재원 아래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이 연구소의 장점”이라며, “연구 방향은 주로 연구소장이 바뀔 때마다 재설정되기 때문에 그 기간이 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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