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초과학의 오늘을 보다 - 화학

 

남좌민 교수 (자연대 화학부)

우리가 요즘 많이 듣는 나노(nano)란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작다’, ‘난쟁이’ 등을 뜻하며, 10억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nm)를 말한다. 이는 대략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의 아주 미세한 크기다. 이렇게 극도로 작은 물질을 다루는 나노과학 분야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차드 파인만이 1959년 미국 물리학회 모임에서 “아주 미세한 크기의 물질이라도 우리가 여러 가지 조작을 할만큼 충분한 여지와 공간이 있다”며 초미세구조를 이용한 나노과학기술이 미래의 기술을 주도할 것이라고 강연한 내용이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나노미터 크기로 존재하는 물질들은 단순히 작다는 점 이외에도 거시적인 세계에서 관찰되지 않았던 새로운 물리화학적 성질을 가진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여러 분야에서 크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한 가지 쉬운 예를 들자면, 금 같은 물질이 10cm 크기의 삼각형 모양으로 존재하든지 30cm 크기의 사각형 모양으로 존재하든지 간에 그 색깔은 밝고 빛나는 노란색으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이 1~100nm 정도의 크기로 존재할 경우(용액상에서), 원래의 밝고 화려한 노란색 대신에 와인색이나 분홍색 등 확연히 다른 색깔을 띠게 된다. 또한 금이 10nm의 구형 입자로 존재하는 경우와 30nm의 삼각형 입자로 존재할 경우를 비교해 봐도 이 둘은 확연히 다른 색깔을 나타낸다. 이는 10cm와 30cm 사이의 크기 차이인 20cm에 비해 턱없이 작은 차이인 20nm 차이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노물질의 다른 중요한 특징으로는 여러 곳에 침투가 용이한 초소형 크기와 단위부피당 가지는 엄청난 표면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우리는 나노기술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오래된 SF 영화인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의 「판타스틱 보야지」와 상대적으로 최근 영화인 「이너 스페이스」에 나오는, 사람 몸속을 돌아다닐 수 있는 초소형 잠수정,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나노소재로 된 전자종이신문,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옥토퍼스 박사가 로봇팔을 조종할 때 쓴 나노선, 영화 「터미네이터3」에서의 신형 터미네이터 등에서 나노기술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생체 내에서 자기복제가 가능한 나노머신이 치명적 테러무기로 묘사된 일본만화 「카우보이 비밥」,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초미세 나노입자 기술의 좋은 점과 위험성을 동시에 그린 『Prey』라는 소설에서도 나노기술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나노기술의 응용분야 중, 기존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여러 가지 생명과학적 현상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거나 의학적으로 나노화학기술(특히 다양한 크기, 모양, 특성을 가진 나노물질의 합성 및 전기적, 광학적, 자기적 특성을 규명하는 기술)을 활용하는 분야를 우리는 나노바이오 화학 분야라고 한다. 이러한 기본 나노구조체는 일종의 기본 부품역할을 하며, 이러한 기초물질에 여러 가지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조합함으로써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나노구조체를 만들 수 있다. 첫 번째 예로는, 나노기술로 실현 가능한 초미세 나노패턴을 이용해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정확히 제대로 해석할 수 있게 해줄 소형 인간 유전자 칩(Human Genome Chip)을 들 수 있다.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Microarray(수백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유전자 spot들로 이루어진 칩)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모든 유전자 정보를 가지는 칩을 만들면 테니스 코트 정도의 커다란 크기가 되어 실제로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노패턴기술을 사용하면 인간 유전자 칩을 작은 동전 정도의 크기로 만들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여러 가지 생명과학 및 의학연구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초고감도 질병진단 시스템을 들 수 있다. 나노입자를 생체물질과 조합하여 나노입자가 가진 여러 가지 특성과 생체물질이 가진 인식기능을 동시에 이용해 사람의 피 등에 있는 특정한 질병과 연관있는 단백질, DNA 등을 초고감도로 감지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암, 치매 등의 질병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손쉽게 진단해 가장 먼저 널리 상용화 될 가능성이 큰 나노바이오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자기공명영상법(MRI) 분야에도 나노기술이 이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나노입자의 자기적 특성과 몸의 여러 부분에 침투할 수 있는 점을 이용하여 기존의 MRI 기술을 보다 더 고감도로 만들어줘 기존에 이미징(imaging)이 어려웠던 암 등의 질병을 보다 초기에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끝으로, 현재 미국 등지에서 활발히 투자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Digital Healthcare를 들 수 있다. 사람의 몸에 부착하고 생활할 수 있는 초미세 칩이 우리 몸의 여러 가지 물질을 감지하고 그 정보를 실시간으로 병원에 전송함으로써 입원하지 않고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모니터할 수 있다. 결국 갑작스럽게 환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를 막을 수 있게 하고 개개인의 자세한 의료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진단 및 치료를 가능케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언급된 기술들이 상용화되고 시스템이 소형화될 경우, 미래에는 우리가 마치 전기밥솥과 냉장고를 이용하듯 여러 가지 무서운 질병들을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어렵지 않게 초기에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병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증상을 손쉽게 모니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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