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구소 3월 세미나 「포스트모던 역사이론과 랑케」

지난 22일(목) 인문대 교수회의실에서 열린 역사연구소 세미나에서 레오폴드 폰 랑케(Leopold von Ranke)사론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허승일 명예교수(역사교육과)는 ‘포스트모던 역사이론과 랑케’라는 주제로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랑케사론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이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역사를 문학과 철학 범주에 넣자고 주장하는 역사학이다. 또 독일 출신의 역사가 랑케는 역사를 서술할 때 원사료에 충실하게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알려졌다.

허승일 교수는 랑케의 역사학적 관점과 랑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먼저 허 교수는 “랑케는 고대의 역사가인 루키아노스와 비슷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루키아노스는 ‘역사가의 단 하나의 과제는 행해진 대로 말하는 것’이라 했고 랑케는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 점 ▲루키아노스는 ‘역사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희생해야 한다’고 했고 랑케는 ‘역사의 법칙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 한 점 ▲루키아노스는 ‘역사란 과학이며 예술이다’고 했고 랑케는 ‘역사란 과학이며 동시에 예술이다’라고 한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음으로 허 교수는 현재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랑케이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랑케를 객관적인 사실만 고집한 학자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러한 인식은 니체, E.H. 카 등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E.H. 카는 랑케의 실증주의적 사학이 미래와의 대화가 단절된 단순한 사실 전달의 학문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 랑케를 비롯한 모든 역사학자는 미래를 염두해 둔 역사적 서술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 교수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랑케의 영향을 받았다는 근거로 우리가 모르는 역사에 관한 랑케의 예술관을 제시했다. 그는 “랑케는 객관적 사실, 즉 역사의 과학성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사실과 사실 사이를 이어주는 역사의 예술성도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는 랑케가 “역사학은 거의 시에 가깝고 또한 어느 정도는 자유로운 노래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치의 조각이나 허구란 없으며 그는 시를 만들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무사 여신의 진실을 언어로 담아내는 일에 충실할 뿐이다”라고 기술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토론을 맡은 안병직 교수(서양사학과)는 “랑케에 대한 국내연구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랑케사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듣기 어려운 내용”이라 말했다. 안 교수는 “모든 포스트모던 역사학자가 랑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포스트모던 역사학자들은 문학과 철학 범주에 역사학을 넣고자 하지만 랑케는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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