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페다고지’가 주는 무게

▲ © 강동환 기자

누구든지 살다보면 삶의 무게를 더해 주는 사건이나 계기를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평생 삶의 방향을 결정해 주며, 또한 사회문제에 부닥쳐 특별한 사회적 행동을 요구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 분별의 좌표가 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입시에 매달려 있는 중등교육 처지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사회문제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시절에 군사교련에 대한 반대 입장의 교내 시위 경험을 딱 한번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선배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 자의식의 발로에 의한 주체적 실천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72년에 입학하여 당시 태릉 골짜기 공과대학 부지 한 귀퉁이 교양과정부에서, 그리고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창작과 비평」의 글들과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한완상 교수의 『현대사회와 청년문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읽은 후, 집중 토론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연구회라는 이름을 표방한 문리대 동아리에서 요즘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 좌파 경향의 서적들을 열심히 숨겨 돌려 읽고 논쟁하고, 때로는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에 의해 흐르는 눈물을 쓴 소주로 달래던 절망의 시절이 눈에 선하다.

이런 절망은 서울대 종합화라는 미명하에 관악산 골짜기에 캠퍼스를 쑤셔 넣은 75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관악 1기 졸업장과 함께 군대 제대 후 학문후속세대의 대열에 들어섰어도 좀처럼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특히 우리 실정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외국 사회과학 지식의 단순한 습득으로 인한 학문의욕 상실까지 겹쳐 더욱 절망에 빠져 갔다. 이러한 절망의 늪을 빠져 나오기 위해 빈민지역인 낙골(현재는 난곡)에서 야학을 하는 등 전공과 관련된 사회복지활동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입했지만 유신 말년의 암울한 시대가 주는 중압감을 감당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절망의 때에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영문판과의 비밀스런 만남은 학문을 통한 희망의 길을 찾는 큰 계기가 되었다.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지도력의 투입을 나 자신보다 외부로부터 구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절망감 자체가 바로 허위의식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다시 말하여, 현실에 매몰된 ‘즉자적 인식’이 아니라, 현실 뒤의 배후를 통찰할 수 있는 ‘대자적 인식’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비판의식이자 의식화임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학문하는 게 혹시 억압적 상황에서 파생된 사회적 불만들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침묵문화의 결과는 아닌지, 혹은 소외, 지배구조의 현상유지 등을 위해 길들이는 교육의 재생산과정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심각한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사회 및 세계의 인과관계와 그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나 자신의 잠재력을 분명히 인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당시 불온서적으로 찍혀 있던 ‘피억압자들의 교육’이라는 부제가 달린 『페다고지』 영문판(72년 초판발행)을 접하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이 원서는 몇 년이 지난 79년에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에 의해 비밀리에 번역 출판되어 노동운동, 야학 및 학생운동, 교사운동의 의식화 교재로 은밀히 활용되었다.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는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복지학이 갖는 존재가치임을 깨달아 지금까지 이를 실천할 수 있음은 바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의 영향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흥식 교수

사회대ㆍ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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