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추리소설 다시보기 - 일본추리소설과 한국의 동향(마지막회)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드거 앨런 포우가 일본에서 환생했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가 등장한 이후 일본 추리소설계는 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번 연재에서는 일본의 추리소설을 평가하고 이와 대비되는 한국의 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일본추리소설=일본추리문학계에는 성격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이유』, 『화차』등 사회 비판을 담은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야베 미유키는 『Step Father Step』같은 동화풍의 미스터리소설도 썼고, 온다 리쿠는 『네버랜드』 등 순정만화 같은 미스터리소설로 애독자를 확보했다.

일찍부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추리문학의 수용도 빨랐다. 19세기 말 번역가 구로이와 루이코가 ‘탐정소설’이라는 장르를 소개했고, 1923년에는 ‘일본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가 「이전 동화」로 등단했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옥문도』, 『팔묘촌』 등의 작품에서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국민 탐정을 등장시켜 본격적인 탐정문학 시대를 열었다.
1958년은 일본추리문학이 일대 지각변동을 맞은 해였다.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일본에는 크고 작은 사회 범죄가 끊이지 않았고, 추리작가들은 예술성과 사회고발 사이에서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가로 논쟁을 거듭했다. 때맞춰 발표된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은 그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평론가 백휴씨는 “일본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담은 『점과 선』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보다 현실에 가까운 ‘사회파’ 추리물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사회파의 득세가 3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현실성 있는 범죄’에 질린 독자들은 다시 ‘예술적인 트릭’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독자의 갈증은 1987년 아야츠지 유키토가 『십각관의 살인』를 발표하면서 해갈됐다. 일본문학 번역가 권일영씨는 “『십각관의 살인』을 통해 트릭에 충실한 퍼즐미스터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아야츠지가 사회파의 대세를 무너뜨린 1980년대 말 이후, 일본추리문학계에는 다양한 장르들이 공존하게 됐다. 권일영씨는 “현재 일본에는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의 경계 자체도 거의 없다”며 “작가들이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추리문학의 가장 큰 힘”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추리소설=1970~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국내추리소설은 1990년대 이후 선정성 시비에 휘말리며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평론가 장경현씨는 “독자를 붙잡을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추리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김내성(1909~1958)과 김성종(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이 꼽힌다. 일본 유학시절인 1935년 일본어 소설 「타원형의 거울」로 등단한 김내성은 귀국 후 『마인』, 『살인 예술가』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추리소설의 터전을 닦았다. 백휴씨는 “몇몇 작품 속에서 동시대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지만 「타원형의 거울」 등은 외국에 내놔도 손색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김성종은 1970년대 한국추리문학의 전성기를 열었던 작가다. 1974년 「최후의 증인」으로 추리소설계에 발을 딛은 김성종은 『어느 창녀의 죽음』, 『피아노 살인』 등의 추리소설뿐 아니라 『여명의 눈동자』등의 역사소설로도 이름을 날렸다. 장경현씨는 “김성종의 작품은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과 맥이 닿아있다”면서 “한국전쟁의 비극이 담긴 「최후의 증인」은 사회성이나 문학적 완성도 측면에서 독보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추리소설은 독자·작가·작품이 모두 부족한 상태다. 추리소설가 정석화씨는 “연간 20~30종의 국내 작품이 발간되지만 초판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백휴씨는 “역사적 사실에 추리 기법을 도입한 역사추리소설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추리소설로 보기 힘들다”며 “사건을 중심으로 작가와 독자가 긴박하게 대결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추리소설이 나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이러한 국내추리소설계의 침체에도 최근 출간된 최혁곤의 『B컷』과 정석화의 『남편을 지독히 사랑하는 여자』 등은 한국추리소설의 새로운 출발을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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