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자본론』 번역 20주년 기념

지난 2005년 영국 BBC방송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선정됐던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2007년은 그의 저서 『자본론(Das Kapital)』이 한국에 정식으로 번역·출간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이에 『대학신문』은 『자본론』이 한국에 번역된 경로와 마르크스 경제학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다양한 함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사회주의의 ‘경전’ 『자본론』=『자본론』은 1867년 칼 마르크스가 쓴 사회주의의 고전이다. 제1편 『자본의 생산과정』, 제2편 『자본의 유통과정』, 제3편 『자본제적 생산의 총과정』 등 총 3권으로 이뤄진 책으로, 이 중 마르크스가 직접 엮은 것은 제1편이고 나머지 두 권은 그의 친구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마르크스의 유고를 정리해 출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론』은 ‘잉여가치론’, ‘노동가치설’,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등의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 법칙과 그에 내재된 모순을 과학적으로 밝혔다. 김수행 교수(경제학부)는  “자본주의를 분석할 수 있는 정확한 틀은 마르크스 경제학뿐”이라며 “근대경제학은 그저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이론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본론』이 번역되기까지=1947년 경제학자 전석담씨 등이 번역한 『자본론』이 한반도에 처음으로 소개되긴 했으나 『자본론』 1편 중 일부만 번역됐고 전석담씨가 월북해 그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마르크스 관련서적은 모두 금서로 지정돼 있었던 87민주화 항쟁 무렵, 국내 처음으로 김준 교수(성공회대·노동사연구소)가 ‘김영민’이라는 가명으로 『자본론』 제1편을 번역했다. 친분이 있었던 최민씨(장애인인권운동가)가 자금을 보태고 김태경씨(도서출판 이론과실천 대표)가 출판을 맡아 1987년 9월에 발간했다. 사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에 저항하고 『자본론』을 한국에 알리겠다는 그들의 의지로 출간된 『자본론』은 일주일 만에 1만5천여 권이 팔렸다.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김태경씨가 구속됐으나,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책의 성격 덕분에 정부는 그 ‘이적성’을 입증하지 못했고 그를 석방하라는 항의서가 빗발치자 곧 풀려났다. 그리고 보름 후 김수행 교수(경제학과)가 전 3권을 번역했고, 강신준 교수(동아대·경제학부)가 김준 교수에 이어 나머지 2,3편을 번역했다. 김수행 교수와 강신준 교수는 번역 이후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으나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를 배치하라는 학생들의 투쟁 끝에 강단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초 소련이 몰락하면서 『자본론』에 대한 관심은 이전보다 줄어들었고,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한국의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강신준 교수는 “국내에 『자본론』을 다 읽은 사람이 50명도 안 되며, 마르크스에 관련된 연구 논문 수가 현저히 적다”고 지적했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중 유일한 마르크스 전공자인 김수행 교수는 “내년 2월 정년퇴임하면 내 후임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가 올 수 있을 지 걱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비판들=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근대경제학의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근대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한계를 비판한다. 이승훈 교수(경제학부)는 “노동이 투하된 만큼 상품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노동가치설’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이 많이 투하됐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가 높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질 상품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노동이 많이 투하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덧붙여 “중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상품에 대한 수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수행 교수는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만 설명된 상품의 가치는 노동가치설에서 설명하는 상품의 가치에 비해 추상적이다”라고 반박했다.
또 김신행 교수(경제학부)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한 측면만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정성진 교수(경상대·경제학과) 등이 “한국의 경제위기는 자본구성의 고도화로 인해 이윤율이 저하됐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김신행 교수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이윤율의 상승과 저하 모두를 설명하고 있는 이론”이라며 “IT혁명 등 신기술 개발로 저하되는 이윤율을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성진 교수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이윤율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김 교수의 이론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경제구조에 예속돼 있는 한국경제가 얼마만큼 선도적인 기술개발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자본론』으로 본 한국사회의 현실=정성진 교수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1997년 경제위기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 교수는 1970년부터 1997년까지 이윤율이 계속 하락하는 현상을 제시하며 “한국의 경제위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자본이 축적되면서 초기에는 일정한 경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그 축적 과정에서 자본과 부의 집중, 경제적 양극화 등의 모순이 발생해 경제위기가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정 교수는 “이러한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해결하려 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문에 분배구조의 모순이 더욱 심화됐다”며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몫을 착취해 경제수치만 올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윤소영 교수(한신대·국제경제학과)는 “최근 벌어졌던 한·미FTA에 대한 찬반 논쟁은 무의미할 뿐”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어떤 분야가 유리하고 어떤 분야가 불리하다는 식의 논쟁은 한·미FTA 체결 배후에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다”며 “이런 개방정책은 다시 찾아올 외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경제의 근본 문제는 부패한 재벌구조에 있는데 이를 개혁하지 않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외환·금융 위기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재벌구조를 개혁하고 분배구조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제2의 경제위기는 조만간 찾아온다”고 경고했다.

◆다시 주목받는 『자본론』=강신준 교수는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뤘지만 경제적 민주화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행했다”며 “앞으로 『자본론』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행 교수도 “자본 축적의 모순과 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됐던 19세기 영국의 상황과 한국의 현실이 너무도 유사하다”며 “건강한 자본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수진 기자 youn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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