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진을 둘러싼 말,말,말

지난달부터 학술연구조성사업비(사업비)를 두고 학술진흥재단(학진)과 교육부의 마찰이 있었다. 교육부가 학진과 상의 없이 인문·사회과학 기초연구과제 관련 지원을 줄였다며 학진 성태용 인문학단장이 불만을 표한 것이다. 또 학진은 교육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매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기초연구자들을 지원하고자 시행했던 연구사업 공고를 일시 중단했고, 학진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련분야 연구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교육부 학술진흥과 최병만 사무관은 “학진에 지원하는 예산 결정권은 교육부에 있기 때문에 이번 지원비 삭감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며 “더욱이 학진에서 삭감됐다고 주장한 사업비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배정돼 인문·사회과학 기초연구과제 관련 지원을 줄였다고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최 사무관은 “인문학 지원이 줄었다는 비판은 인문학계에서 나오는 흔한 소리”라고 덧붙였다. 이에 학진 김은성 정책홍보팀장은 “이미 교육부와 해결된 일”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학계에서 학진이 갖는 비중은 매우 크다. 학계에 지원하는 사업비 중 96%가 학진에 배정돼 대부분의 연구비를 학진에서 지원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학진에 등록된 학회지에 논문을 등재해야만 공식적인 연구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한정된 지원마저 학진에만 의존하다 보니 이를 둘러싼 연구자들의 불만이 생긴다는 데 있다.

학진은 ‘우수기초연구지원 사업군’을 통해 인문·사회과학을 지원하지만 학계가 느끼는 지원 사업에 대한 만족도는 그리 크지 않다. 최권행 교수(불어불문학과)는 “정책·사업 등과 관련된 연구분야는 (학진이 아니라) 그 연구로 수혜를 입는 사람들이 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용학문이나 계량적 연구 등 수익을 낼 수 있는 연구분야는 학진이 아닌 연구결과로 이익을 본 기업 등이 연구비를 지원하고, 대신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학진의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대의 한 조교는 “지원이 적다 보니 한 연구사업을 두고 연구팀들끼리 사투가 벌어진다”며 “사업에서 배제된 연구팀은 피해의식이 생겨 학진에 대한 각종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학진에서 학문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업을 공고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학진에서 인문학 분야에 공동연구과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인문학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이상길 교수(경남대·역사학과)는 “인문학 연구는 다른 학문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생각이 연구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러 명이 공동연구를 하는 경우 생각을 하나로 묶기 어려워 연구가 수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연구 관련 행정 업무가 심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나 학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량적 평가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고고학 탐구회’는 최근 「고고학 탐구」를 발간, 학진의 영향에서 벗어나 작지만 참신한 논문을 자유롭게 싣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고고학 탐구회 이한상 교수(동양대·문화재발굴학과)는 “학진의 기준을 맞추려고 중진 교수들의 논문만 싣는 학회의 경향 때문에 학계 저변에 있는 연구진들의 소외감이 심하다”며 “더 다양한 층위의 연구자들이 논문을 실어 학문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고 창간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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