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명 (사범대 교수·지리교육과)

선생과 학생 사이에 대화와 논쟁 부족
용기있게 스승의 ‘한계’ 지적하고 ‘말싸움’ 걸어라


대화? 참 쉬운 말이다.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누가 그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모르겠는가?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다. 교육에서도 대화를 강조하지만, 언제 대화가 제대로 된 적이 있던가? 언제부터 인간이 ‘교육’이라는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교육현장에서는 ‘일방적이다’라는 불만이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일방적’인 문제는 교육현장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권력이 존재하고, 대부분의 말은 결국 권력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예로부터 ‘진리’를 말하는 ‘선생’은 대단한 권력이었고, 군사부일체라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선생은 무서운 권력인가보다. 가끔 학생들과 어울려 한잔할 때가 있는데, 재미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술집에 들어가 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학생들이 앉기 시작하는데, 나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리부터 채워진다. 그리고 나에게서 먼 자리에 앉은 학생들 사이에선 시끌벅적한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내 주변 자리에서 말하는 이는 나뿐이다.

수업시간에도 특이한 점을 볼 수 있다. 발표를 시켜보면, 교과서에 나오는 외국의 유명 학자에 대해서는 과감할 정도로 비판을 잘 하는데, ‘선생’의 말에 대해서는 아부용(?) 이외의 위험한 발언은 하지 않는다.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다. 선생의 논문을 인용하여 자신의 글을 꾸미는 일은 하지만, 선생의 논문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해 보겠다고 나서는 용기 있는 학생은 보기 어렵다.

틈나는 대로 “나를 밟고 넘지 않고서 어찌 너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성장할 수 있겠나?”라는 말을 자주 해보지만, 그 말도 메아리 없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같은 학과의 다른 선생님들, 학회의 동문 선배 교수들의 논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는 등의 소리를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학생들이 괜한 모험을 하였다간, 학회에서 ‘왕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어 그런 것은 아닐까?

이유야 어쨌든 이런 문화는 바꿔야 할 것 같다. 과거에는 옛 성인의 말씀을 성경으로 여기고 배워도 되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의 주기가 자꾸 짧아지는 이 사회에선 선생의 업적을 밟고, 선생보다 앞서 나가는 학생을 기르지 못하면, 선생의 지위도 유지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학생들이여, 선생의 말에 대(對)한 말(話)도 좀 해라. 제발 스승의 그림자를 밟아라. 선생 앞에서 입만 벌리고, 선생이 주는 답만 받아먹을 생각 말고, 선생의 업적을 밟고, 그 위에 서서 문제를 찾아봐라. 서울대 학생들이 선생의 그늘 아래 예의만 갖추면서 착한 학생 노릇만 한다면, 서울대의 앞날이 위험하지 않겠는가? 선생을 논쟁(debate) 파트너라고 생각하면서 ‘모험’ 걸고, ‘말싸움’ 걸어오는 학생이 늘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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