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통해 사고·경청 능력 기르고 인간 존중 배워‘지성의 요람’ 대학에서 토론 활발히 이뤄져야

국제대학원 석사과정

학기 초 국제협상과 관련한 대학원 수업에서 여러 명의 각국 정부 대표가 하나의 쌀 수출국으로부터 쌀 수입을 유치하는 가상협상을 실험하면서 크게 두 가지를 체험했다. 첫째, 이성적이리라 기대했던 협상 참여자들이 매력적인 거래 조건보다 상대국 대표의 말투나 표현 등 감정적인 요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았으며, 둘째,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협상 끝에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보여 결국 모두가 흥분한 상태에서 협상이 결렬되는 개운치 않은 결말을 맺었다.

앞선 협상실험은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의 균형이 아쉽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이 세 요소를 설득의 방법으로 꼽았다. 로고스는 사실, 근거, 추론, 논증을 통해 올바른 결정을 하는 이성적 측면을 나타낸다. 파토스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효과적인 표현 방식, 즉 눈높이 말하기, 적절한 비유와 사례의 제시 등을 통해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에토스는 화자가 전하는 메시지의 신뢰성,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욕설, 인신공격 등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이다. 이 설득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토론은 한·미 FTA 협상, 북핵 6자회담에서도 이루어지지만 사실은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법학, 행정, 신문방송, 어문, 경영 등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전공은 정치한 사고 전개를 위해서 토론이 불가피하며, 학생들이 졸업 후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어도 원만한 의사소통을 통해 구축된 대인관계가 사회생활에 해가 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훗날 인생의 고난과 갈등의 순간에 판단의 잣대로서 큰 힘이 되어줄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자 과제이다.
물론 토론의 기술과 직감은 하루 새에 길러지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 직전 열린 TV 토론에서 닉슨을 압도하여 열세였던 판도를 뒤집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의 뒤에는 식탁에서 토론 교육을 했던 어머니 로즈 여사가 있었다. 로즈 여사는 자녀들에게 아침식사 전에 그날의 신문을 반드시 읽도록 하고 식사 중에는 기사들을 화제로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유도했다. 케네디 가에서는 아침마다 토론의 장이 열린 셈이다.

최근 들어 각 대학, 정부 주최의 대학생 토론대회가 부쩍 늘어났으며, 심지어는 아시아의 토론문화를 선도한다는 취지로 한국 정부기관이 동북아 지역의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국제적 규모의 토론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들은 토론 문화가 설익은 한국 대학가에 공개적인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우리 학교도 토론식 수업을 늘리고 수준 있는 교내 토론대회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기회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고 경청, 인간존중의 미덕을 배울 수도 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 등 학창 시절 세계적인 토론대회를 거치며 실력을 쌓은 인물들이 훌륭한 지도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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