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정치학과·05

요즘 학교 곳곳에서 장터가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장터에서 막걸리나 병맥주 같은 주류나 먹을거리를 사들고 주위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터에서 음식을 사먹거나 장터를 직접 열면서 구성원들 간의 친목을 다지는 장터문화는 대학의 낭만이며,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재미라고 여겨지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열리는 장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이 삭제된 듯하다. 바로 ‘왜 장터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과거에는 장터가 학생들의 자치행사로서 구성원들 간의 단순한 친목도모나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돕거나 연대하며 사회에 대해 ‘고민’해본다는 의미도 지녔다.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학교 내 장터가 이런 의미에서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장터를 보면 이러한 고민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장터의 수익금이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심지어는 어떤 단체에서 장터를 주관하는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경우마저 있다.

혹자는 장터 같은 ‘즐거운 행사’를 왜 그리도 심각하게 바라보느냐고, 장터를 왜 굳이 ‘고민’하면서 정치적인 논리와 연관시키려 하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장터를 여는 것 자체가 이미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치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장터는 학교 안에서 특정한 공적 공간-학생회관 앞이든, 해방터든-을 점유해 열린다. 장터의 수익금을 어떠한 곳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장터의 의미는 달라진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장터는 순수하게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공간을 점유하고 수익을 내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장터를 단지 ‘우리끼리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더이상의 고민을 멈춰버리는 것은 ‘학생들의 자치 활동이자 사회적 고민이 담긴 활동’이라는 장터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다.

장터를 준비하는 데에 준비해야 할 것은 조리도구와 먹을거리뿐만이 아니다. 장터를 왜 하는지, 학교에서 장터를 열어 돈을 번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단지 먹고 즐기며 돈 버는 행사로서의 장터가 아닌, 그 이상의 고민이 담긴 장터가 열렸으면 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