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 ‘분화와 심화, 어둠 속의 풍경들’열려

▲ 사진: 황귀영 기자

김수이 교수(왼쪽)와 방민호 교수(오른쪽)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각각 신석정, 이효석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제시했다.

“식민지 시대의 자연친화적 문학작품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과의 긴장을 감추는 오래된 가면일 수 있다”

지난 11일(금) 대산문화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프레스센터에서 「제7회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 ‘분화와 심화, 어둠 속의 풍경들’」을 개최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가는 박세영, 신석정, 이효석 등 12명이다. 식민통치와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격랑의 인생을 피할 수 없었던 이들은 당대의 풍경을 증거하는 독특한 초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 쏟아졌다.

김수이 교수(경희대·교양학부)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슬픈 목가」로 유명한 시인 신석정(1907~1974)을 재조명했다. 그는 신석정 초기 시에 그려진 ‘자연’을 전통적인 자연관, 특히 노장사상의 관점에서 고찰한 기존의 연구를 비판했다. 여기에는 신석정의 시가 암울하고 폭력적이었던 당대의 현실을 투영하지 않고 동화적 자연 풍경만 담은 것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신석정의 시가 서양의 목가적인 전원과 노장사상의 탈속적인 자연의 미학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당대의 현실과의 반목과 불화가 음각(陰刻)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표층 전언은 ‘먼 나라’에 가고 싶은 열망이지만, 심층 전언은 먼 나라에 갈 수 없는 절망과 상실감이며, 최종적으로 환기하는 것은 먼 나라를 상실한 채 ‘지금 여기’와 ‘먼 나라’ 사이에서 분열된 ‘근대적 자아’의 불행한 내면이라는 것이다.

또 김 교수는 “신석정 초기 시의 ‘자연’을 비판할 때 그 준거로 현실인식의 결핍을 추론하는 반영론적 관점보다는, 단조롭고 평면적인 풍경과 미학 자체를 문제 삼는 해석학적 관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러니하게도 단조롭고 평면적인 미학에 근거한 신석정의 초기 시가 비판적 현실인식을 앞세운 후기 시보다 오히려 더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며 “‘시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문제는 한국시사(詩史) 연구의 공통과제”라고 설명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1907~1942)을 재조명한 방민호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이효석이 서정적·순응적·도피적이라는 기존의 평가를 비판했다. 방 교수는 “이효석은 역사와 시국을 매우 첨예하게 인식했으며 이를 자연과 우주에 부합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제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효석은 주인공들이 자연에 합류돼 진정한 자아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당대 사회의 억압과 부조리를 비판했다”고 주장했다. 이효석이 제시한 인간상은 인위적인 관습과 제도에 구속받지 않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또 방 교수는 이효석을 일본의 제국주의 논리에 포섭된 작가로 평가하는 것도 비판했다. 이효석은 ▲일제 말기에 전쟁 동원의 논리로 제출된 국민문학론을 비판했고 ▲일문으로 소설을 쓰긴 했지만 그 소설의 주인공이 일본에 대해 강력한 비협력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시국에 대한 조선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함축하고 있는 자전적 소설을 많이 썼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에 비판적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임용택 교수(인하대·인문학부 일어일본학전공)는 친일작가 김소운을 번역문학적 측면에서 재조명했으며 이상우 교수(영남대·국어국문학)는 국문학자 김재철을 우리나라 국문학 연구의 제1세대이자 연극사 연구의 개척자로 집중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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