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만화가 강풀은 ‘26년’이라는 인터넷 만화연재를 통해 5·18광주민중항쟁으로 슬픔을 품고 사는 자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 만화는 아직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의 뻔뻔스러움을 꼬집으며 26년 전 광주를 잊어가는 자들과 그날의 잔혹함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한반도 어느 한편에서는 학살자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등장하는 모순된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역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낳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80년 5월의 광주를 바라보는 오늘의 상반된 입장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슬프기까지 하다.

분명히 5·18광주민중항쟁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과 희생이었다. 광주시민의 저항은 신군부세력 집권을 막고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며 무자비한 살육의 폭압 앞에 결연하게 온 몸을 던진 민중의 항쟁이었다. 진압군과 시민의 싸움은 집단적이었으나 죽음은 개인적으로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던진 광주시민의 희생은 숭고한 민주화 열망의 표출이었다. 또 광주시민이 피로써 찾은 자유를 더럽히지 않고 해방공간 광주를 민주주의 실현의 장으로 지켜낸 것은 민중의 건강한 자치 의식의 반영이었다.

한국현대사 전개에서 민중의 피흘림은 민주화의 꽃을 피우기 위한 중요한 기폭제였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과 희생의 반복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자들은 민중의 생존권을 억압하는 데 앞장서고 자본가와 기득권 세력의 권력유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민주화 투쟁 과정의 국가폭력이 유형적·군사적·물리적 탄압이었다면 이제는 무형적이고 경제적인 탄압으로 변화했다. 집권세력은 노동자 농민의 생존을 가로막는 한`미FTA를 졸속추진하고, 협상결과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장밋빛 미래만을 선전하며 민중을 기만하고 있다. 또 신자유주의의 미명 아래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고용불안의 비정규직 양산을 합법화하는 법적 토대까지 마련했다.

세월이 지날수록 기억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작가 황석영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썼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광주민중항쟁의 기억을 넘어 그들의 정신을 다시 되새길 때를 맞이했다. 인간성의 고귀함을 짓밟는 민중 억압적 정치권력에 대한 분개와 과감한 반대의사의 표현이 바로 희생된 광주 민중들의 참다운 민주주의 실현 희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최정성
  정치학과`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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