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를 많이 둔 어느 한국시민이 집안에 상(喪)을 당해 상주가 되었다. 상주가 된 그에게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찾아와 애도를 표했다. 처음 온 것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된 서양인 친구였다. 한국어가 짧았던 그는 "sorry"에 해당하는 한국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미리 외워왔는지, 상주와 맞절을 하고는 "유감입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첫 방문객보다는 더 오랜 한국생활 경험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외국인 친구가 찾아와 자신감 있는 억양과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한국적이고도 자연스로운 표현으로 애도의 뜻을 인상깊게 전달한 사람은 그보다 더 나중에 찾아온, 10년 이상의 한국생활 경험을 가진 외국인이었는데, 그가 상주에게 건넨 애도의 표현은 다음과 같았다.
"아이고, 거, 이것, 참…"


사리를 따져볼 때 "유감스럽다"는 게 틀린 말도 아니고,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도 나름대로 괜찮은 표현이다. 그렇지만, 상심에 잠겨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해 찾아온 친구가 너무나도 침착하게 적절한 표현을 또박또박 발음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얄밉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말하는 억양에 따라서는 '깐죽거린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럴 때는 정교한 어휘의 선택보다도, 오히려 감탄사와 말줄임표가 효율적인 의사전달 수단이 된다. 우선 감탄사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도 그의 슬픔에 동감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또 말줄임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알아서 상상하여 '말하는 이도 아마 그 말을 하고 싶었으려니'라고 믿게끔 만들어 주는 마력을 지닌다. '초능력'의 산물이라는 마술들이 으레 '속임수'의 결과이듯, 이러한 감탄사나 말줄임표가 지니는 '마력'의 원천 역시 말하는 이의 '자상함'이나 '인격'이라기보다는 얕은 기교와 잔꾀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스타워즈'의 악역 다스베이더가 말했듯이, 어둠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많은 사람들은 미처 끝맺지 못한 말의 여백에 대해 "도대체 '…'라니,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라는 '밝고 이성적인 의문'을 갖지 않고, 그 여백에 자신의 상상을 채워넣으려는 '어둡고 몽매한 충동'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공적인 사안과 관련한 공인의 소신성 발언을 두고 여론이 뭇매를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출세할 예비엘리트들은 아무쪼록 '말줄임표의 마력'을 무시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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