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 작가의 ‘끔찍한’ 일탈

 

“요즘 제 기분 상태가 좋지 않아서 하고 싶지 않네요. 전화 인터뷰는 몰라도 지금은 누구도 만나기 싫습니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백민석씨의 태도가 당황스럽다. 그 ‘기분 상태’에 대해 물어볼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을 만큼 단호하고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 등단 8년째인 이른바 90년대 작가, 촉망받는 신인 작가를 넘어 이제는 중견 작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며칠 후에야 충남 서산에 살고 있는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지만, 도저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 얼마 전 태안 가까이 있는 한 풍광 좋은 시골 마을로 이사와 살고 있다”고 말했다. 뭔가 감추는 듯하면서도 거침없는 그의 말투를 듣고 있자니,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파격적 인상만은 분명했던 그의 작품이 떠올랐다.

 

의도된 괴팍함, 과격성 실험적 소재 … SF까지

 

그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중편 「내가 사랑한 캔디」(1995년)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한때 문단 시스템 안으로의 편입이라는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그는 ‘의도된 괴팍함’을 즐겨 사용하는 특이한 작가다. 『목화밭 엽기전』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그의 작품 세계는 전반적으로 ‘엽기적’이고 끔찍하다. 근친상간, 집단성교, 동성애, 수간, 납치, 살해, 암장 등 제도화 된 권위를 파괴하는 문학적 장치는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1997)에서 ‘괴기스러움’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그의 성향은 『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2000) 등의 작품에서 ‘아이의 어른되기’라는 주제로 수렴되는 동시에 과격성을 더해간다. 그에게 ‘어른되기’는 타락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 가치전도라고 할 수 있다. 최근작 『죽은 올빼미 농장』(2003)도 ‘어른되기’의 변주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아파트먼트 키드’로 표상되는 현대적 인간성이 농장의 이미지인 원시성, 원형성보다 결코 진보된 것이 아님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괴팍함’에 천착하는 작가가 적은데 전 이것을 의도된 전략으로 갖자는 생각을 견지해 왔습니다. 전통적인 창작 기법의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문학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다고 봅니다.”

 

“순수문학 작가라는 자의식이 내 힘”
환타지소설, 제도권 시각에서 판단 말아야

 

그는 장편 『헤이, 우리 소풍 간다』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전자는 “이제 더 이상 부릴 수 없는 객기를 당시에 마음껏 부려보았기 때문”이고 후자는 “객기를 자제하고 전통적 소설 틀에 따라 쓰려고 노력했던 특별한 기억 때문”이란다. 다소 아이러니한 대답을 마치고 그는 멋적은 듯 웃어버린다.

 

e-book으로 발표된 후 단행본으로 발간되는 특이한 출판과정을 거친 작품도 있다. “인터넷 상의 독자를 고려해 가급적 짧고 경쾌한 문장을 많이 썼다”는 SF 소설 『러셔』에서 그는 통치와 지배, 복종이나 협력 혹은 저항 등 사회적 활동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질문한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 검푸른 표지 디자인의 느낌 때문인지 많은 서점에서는 이 소설을 환타지 코너에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는 『러셔』 역시 순수문학이며, 자기 스스로 순수문학 작가임을 강조했다.

 

“순수문학 작가로서 언어 예술을 한다는 자의식이 제가 글을 쓰는 근원적 힘입니다. 그 자의식에는 책임감과 숙명 의식, 자긍심, 자존심도 필요하죠.” 한편, 그는 다양한 작가들의 서로 다른 의도를 독자들이 넓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구분하는 제도권의 시각에서 보면 『드레곤 라자』나 『퇴마록』은 다소 불온한 문학작품이지만, 언어 예술이라는 관점이 아닌 창조의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 역시 문학적 진실을 담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평론가 김동식은 “백민석 작품에서 희망은 언제나 좌절돼 있는 희망이며, 욕망은 절망에서 출발하는 욕망이다”이라고 말한다. ‘좌절된 희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소 위험한 과격함까지도 동원할 줄 아는 그는 솔직한 작가다. 또한 기꺼이 ‘절망에서 출발’할 줄 아는 그이기에 그의 글쓰기는 치열할 수 있는 것이다.

 

“소풍을 가는 거지요… 소풍요, 소풍? 이 밤중에요? 어디로요? 어디? 그곳은 이미 다 잊혀진 곳이지요… 예? 씹고 난 껌처럼 버려졌으며, 누군가의 구두 밑창에 붙어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져버린 곳이지요…” 『헤이, 우리 소풍간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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