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석좌교수(프린스턴대) 강연회

이유달(철학과 생명의료윤리 강사)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 석좌 교수 피터 싱어가 또 한국에 왔다. 내 기억만으로도 벌써 세 번째다. 그는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나 맬버른대까지 다니고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20세기 공리주의의 최대 거장 리차드 헤어(Richard M. Hare)의 학생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의 사상은 흄, 벤담, 밀을 잇는 공리주의적 전통에 굳게 발을 디디고 있다.

▲ 사진: 조장연 기자

그는 2005년 미국의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00인’에 포함될 정도로 유명한데, 그도 그럴 것이 상식적인 윤리적 직관에 반하는 주장을 소리 높여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73년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에서 마치 우리가 노예를 해방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으로 잘못이듯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맛있게 먹는 ‘소’, ‘돼지’, ‘닭’ 등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윤리적으로 커다란 잘못을 범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그는 심각한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신생아가 계속 사는 것이 그 신생아의 삶의 질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부모와 의사가 판단하는 경우 신생아의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다는 우리의 상식적 직관에 반하는 주장을 편다.

우리는 보통 그러한 주장을 단번에 거부하지만 우리의 직관 중에는 합리적인 근거(이유)가 없는 것들도 많아서 우리의 직관을 이성에 회부해 조사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번 서울대에서의 강연 내용은 바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거기서 그는 사실을 탐구하는 과학은 가치나 당위를 탐구하는 윤리학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지만 적어도 간접적인 기여를 한다고 말하며 발전한 신경과학적 실험 한 가지를 예로 제시한다.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그 실험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백 년 동안의 산업 발달로 보다 먼 거리에 있는 타인을 기계 조작을 통해 죽이는 것에는 우리의 직관이 그만큼 적응하지 못했다.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기계를 조작해 한 사람을 결국 죽게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윤리적 원칙에 의거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답변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우리의 윤리적 직관은 수백만 년 동안의 문화적 관습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타인을 밀쳐 죽임으로써 다른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밀쳐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대답한다. 근거리에 있는 타인을 내가 직접 죽일 수 없다는 직관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통해 관습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렇지만 두 경우 모두 다섯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자신이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두 경우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중요한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소수이지만 두 번째 경우에도 ‘밀쳐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정서 담당 두뇌의 활성화는 ‘밀치면 안 된다’고 답변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같다는 것을 실험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밀쳐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보다 늦게 대답하는 대신 두뇌의 인지 담당 영역도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형성되어 온 우리의 직관에 따라 행위를 할 때 잘못을 범하게 되는 특수한 경우가 있는데, 우리 중 일부는 수백만 년 동안 형성된 직관에 반해 윤리적 원칙에 입각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도덕적인 판단을 할 때 이성적인 판단에 의거해야지 그저 직관에 호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과학적 실험의 뒷받침을 받아 알 수 있다고 싱어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강연이 끝난 후 여러 명이 질문을 했는데 한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한 사람을 밀쳐 죽여야만 다섯을 살릴 수 있는 특별한 경우 밀쳐 죽여라’는 도덕 원칙을 사회적인 규범으로 정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싱어는 결국 그 원칙과 그 반대의 원칙에 의해 사회에 나타나는 이익-손해 분석을 비교해 결정할 문제이며 또한 이런 원칙을 악용하는 인간이 많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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