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가의 목소리로 남다’ - 소설가 한강

▲ 사진: 황귀영 기자, 삽화: 박혜빈 기자
소설과 시를 넘나드는 젊은 작가로 알려진 한강씨를 지난 18일(금) 예술의전당 내 아르코예술정보관에서 만났다. 그는 유성호 교수(한국교원대·국어교육과)가 진행하는 ‘문학, 작가의 목소리로 남다’의 열한 번째 프로그램 「세상 상처의 풍경들」에 출연했다. 이 행사는 올해 3월부터 매주 작가 한 명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한강씨는 1970년생이다.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외 4편의 시를 발표한 뒤 이듬해엔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젊은 예술가상(2000), 한국 소설문학상(2000)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지난 2005년 소설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한 실력파 작가다.

이번 프로그램은 한강씨가 자신의 소설 중 일부를 차례로 낭독하고 해당 작품에 대해 진행자와 자유로운 대담을 나눈 후 관객들의 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낭독 대상작은 「여수의 사랑」(1995), 「검은 사슴」(1998), 「내 여자의 열매」(2000), 「그대의 차가운 손」(2002), 「노랑무늬영원」(2003) 등 5편이었다.
맨 처음 낭독한 「여수의 사랑」은 20대 중반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의식세계가 드러난다. “당시는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시기였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창밖의 빗소리만큼이나 우수를 불러일으켰다(당일엔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그는 “작품 제목의 여수는 실제 지명과 여행자의 우수라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며 “여수에 기반을 둔 두 여인의 상처 입은 영혼을 조명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한때 잡지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강씨가 우연히 조각가를 만난 뒤 떠오른 영감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액자소설의 화자인 조각가 ‘운형’은 오발탄으로 잘려나간 엄지와 검지를 교묘히 감추려는 몸부림 속에서 살다간 외삼촌의 손을 바라보며 모든 인간은 감춰져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운형의 관찰습관과 조각가로서의 삶, 사람의 인체를 직접 뜨는 작업(라이프 캐스팅)은 모두 ‘손’이란 단 하나의 발원지로 귀결되며 긴밀한 연결성을 지닌다. 작가는 작품에 대해 “내 작품 중 추리적 기법과 해피엔딩을 결합한 거의 유일한 작품”이라며 “최대한 간결한 문체를 쓰면서도 그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뒤이은 질의응답시간에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책상에 앉아계시는 뒷모습을 가장 많이 봐서 별다른 영향을 받진 않은 것 같다”며 “당시에는 왜 오래 앉아계시는지 많이 의아했었지만 지금 내가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아버지가 이해된다”며 웃었다. “동년배 작가들 중 경쟁자로 꼽는 사람은 있느냐”는 물음에는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에 비해 작가 수가 너무 적어 오히려 연대감을 강하게 느낀다”며 “특히 장편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이거 쓰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하는 연민의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빠르면 올해 안에 새 장편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시인 한강은 “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인간과 신의 대화라고 생각한다”며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일찍이 9세 때 친척들 앞에서 ‘나는 시인이 될 것’이라고 당찬 의지를 밝혔다는 한강. 그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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