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무의 죽음』, 차윤정, 웅진지식하우스

탄생과 죽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이다. 인간이 나무를 오랫동안 숭배해온 것은 그들이 시간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생명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원시사회의 토템 신앙이 그랬고 샤머니즘이 그랬다.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던 옛 어른들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신단수를 신성시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옛 조상이 지녔던 경외심을 잊은 듯하다. 화려한 색상의 꽃과 열매, 잘 정돈된 가로수에만 눈길을 돌릴 뿐 정작 숲 속의 생태계에는 관심이 없다. 이에 나무와 숲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신갈나무 투쟁기』(1999), 『숲의 생활사』(2004) 등을 펴낸 바 있는 차윤정 작가가 이번에는 『나무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죽은 나무와 관련된 생태계를 소개한다.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돼있다. ‘오래된 숲(1장)’의 모습과 기능을 서술한 작가는 ‘죽은 나무(2장)’에서 나무의 죽음 이면에 숨은 생태계를 비춘다. 공기 중을 떠돌던 균의 포자가 수피(樹皮)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침입하는 과정이라든지 딱따구리, 딱정벌레 등이 죽은 나무를 서식처로 활용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계류에 쓰러진 나무(3장)’에서 작가의 필력은 더욱 빛난다. 물속의 부유물을 걸러내어 물고기의 시야를 확보해주고 작은 물고기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것이 죽은 나무다. 그렇기에 인간사회에서 ‘연목구어’가 가지는 의미는 물 속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나무뿐 아니라 개구리, 가재, 물새 등 물에서 사는 생명체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다. 끝으로 ‘나무에서 흙으로(4장)’는 죽은 나무가 숱한 생물체의 도움을 받아 흙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삶의 밑거름이 되는 과정을 짚는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나무의 일생에서 웅장한 줄기와 풍성한 수관이 깃든 시기는 절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살아있을 때보다 오히려 죽는 순간부터 숲의 성장에 많은 기여를 하는 나무의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딱따구리뿐 아니라 균사와 버섯도 모두 나무의 덕을 보고 산다.

곳곳에 배치된 150여 컷의 사진도 눈길을 끈다. 나무가 눈앞에 서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 덕분에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전문적 지식 사이사이에 곁들인 여러 재미있는 일화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소재가 환경이니만큼 자칫 글이 딱딱해질 수 있었지만 저자는 특유의 부드러운 문체와 은유를 통해 이를 극복했다.

작가는 “사는 것들은 다 죽게 마련이고 다 죽어야만 모든 것이 재분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는 그의 메시지를 통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죽은 나무가 살아난다. 환경생태학적 지식과 함께 나무와 숲이 얼마나 인간에게 소중한 존재인지를 설명한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나무의 전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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