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교수(농생대 ·산림과학부)

이제는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습지보호지역 등을 포함한 보호지역도 우리가 아닌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등급이 매겨질 것 같다. 지난 5월 초 스페인에서 50여 개 국가의 보호지역 전문가 120여 명이 모여 보호지역의 정의와 분류체계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현재의 분류체계 상 1등급은 엄격히 통제되는 학술적보호지역, 2등급은 국립공원, 3등급은 자연기념물(natural monument) 등이다. 각 등급에 해당하는 보호지역은 각각의 관리목표와 지침에 합당하게 관리되도록 권고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국가가 보호지역을 지정만 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유명무실한 보호지역(paper park)’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창피하지 않도록 보호지역의 숫자만 채우고 있는 나라가 상당수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 보호지역인 국립공원 20개 중에 IUCN 체계에 의한 2등급 국립공원은 설악산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소위 경관보호지역이라는 5등급에 해당한다. 이름은 국립공원이지만 국제기구에서 논의하는 국립공원의 자격과 지위를 갖기에는 뭔가 부족한 공원들인 셈이다. 또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보전모니터링센터에서 집계하고 있는 유엔리스트에는 우리나라의 보호지역 등록률이 4%에 그치고 있다. 총 1000여 개 보호지역 중에 44곳만이 등록되어 있다.

국제사회의 추세를 무시한 결과는 처절했다. 다보스포럼이 제시하는 환경지속성지수(ESI)는 세계 146개국 중 122위(2005년)다. 실제보다 저평가 받은 것은 우리가 자연환경에 대한 적절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향후 보호지역의 국제적인 기준에 따른 분류는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람사(Ramsar) 협약에 따른 습지보호지역 등의 지정에 전제조건이 된다. 생물다양성협약(CBD)에서도 보호지역을 국제적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을 국가 의무이행사항으로 채택할 전망이다. 최근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유력시 되고 있는 제주도나 이미 6개가 지정되어 있는 국내 람사 사이트들은 이런 어려운 절차 없이 다행히(?) 선정되었다.
2005년 설악산국립공원은 IUCN으로부터 공식인증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국제무대에 조심스레 등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 이어 국립공원 공식인증서를 받은 두 번째 나라가 됐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정부는 한국의 보호지역에 대한 관리성과를 국제적 기준에 의해 평가받고 싶다는 견해를 전달했다. 일이 진행될 경우 핀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총괄적인 관리평가 수행국이 될 것이다. 보호지역에 관한 우리의 속사정을 다 드러내고 평가받겠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우리도 다소간의 자신감이 생겼고 또 국제전문가들의 충고를 듣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는 제안이다. 정말 잘 된 일이다.

만약 이번 관리평가가 제대로 수행되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평가결과가 보호지역 등급인증(verification)에 활용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내년 10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는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이 분야의 올림픽이다. 내년 자연보전올림픽에서 금메달 한 개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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