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의 기억』, 조너던 와이너, 사이언스 북스

자식이 부모의 생김새를 닮았다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왼손잡이가 유전된다는 사실에는 의견이 분분한 때가 있었다. 지금은 왼손잡이의 유전이 밝혀졌지만 정신적 특성이나 지적 능력, 행동 특성 등이 유전된다는 사실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러한 행동과 유전의 관계는 여러 과학자의 연구를 통해 그 진위가 증명돼 왔다.

1970년대 행동연구의 개척자인 시모어 벤저는 초파리를 통해 행동도 유전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행동유전학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먹다 남긴 과일 주위를 날아다니던 초파리가 그를 통해 유전학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사이언스』지의 기자 조너던 와이너는 행동유전에 대한 비밀을 추적한 벤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가 진화해가는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핀치의 부리』로 1995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파리의 기억』이 그리는 과학 이야기는 평소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행동유전학 이론과 연구과정 그리고 그 성과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행동도 유전자에 기억돼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증거를 찾아낸 벤저의 연구과정을 찬찬히 좇는다. 벤저의 연구는 시작부터 첩첩산중이었다. 그의 연구는 ‘행동이 과연 유전되는가’하는 문제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벤저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 속에 인간의 생김새는 물론 행동과 생각도 암호화 돼 있다고 믿고, 초파리를 대상으로 유전자가 어떻게 행동을 조절하는지 연구했다.

벤저가 초파리를 가둬놓으려고 시험관 두 개를 이어붙일 생각을 한 것은 1966년의 어느 밤이었다. 그는 불을 끈 다음 시험관을 작업대에 놓고 초파리의 반대편에서 불빛을 비췄다. 모든 초파리는 빛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이 하는 행동은 모두 달랐다. 불빛으로 달려들다 속도를 줄이는 초파리, 가만히 앉아있다 나중에야 불빛을 향해 가는 초파리도 있었다. 실험결과 초파리는 각각 다른 행동을 보였고 이로 인해 초파리도 특정한 행동 특성이 있음을 알아낸다. 그의 연구진은 특정 초파리의 교배 등을 통해 초파리의 행동 특성이 유전된다는 것을 설명해냈다. 또 돌연변이들을 이용해 몇 분 더, 몇 시간 더, 며칠 더 행동 특성을 기억하게 하는 유전자도 추적했다. 그 결과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고, 행동이란 단백질이 만들어낸 구조의 움직임과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버지와 자식이 닮은 것을 인정한다면 행동 역시 엄연히 유전자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비밀을 밝혀낸 벤저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어려운 과학 서적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읽으면 저절로 역사를 이해하듯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새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진화학 등에 상당한 지식을 갖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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