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창작과비평』 여름호

긴 소설에 대한 긴 이야기가 펼쳐졌다.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는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라는 제목의 특집으로 한국 장편소설이 부진한 원인을 짚어보고 장편소설의 활성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교수(한신대·문예창작학과)와 최원식 교수(인하대·동양어문학부)는 ‘창조적 장편의 시대를 대망한다’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최 교수는 “장편소설이 ‘근대문학의 챔피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우리 장편의 역사는 아직도 빈곤하다”며 “한국문학이 ‘창조적 장편의 시대’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편 시대의 도래를 제약하는 원인으로 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통이 두텁지 않다는 것과 작가들이 인간을 사회 전체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서영채 교수는 박민규의 『핑퐁』, 김영하의 『빛의 제국』,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등과 같은 작품을 한국 장편소설의 가능성과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 교수는 “이들 소설은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독자의 눈높이를 배려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들이 말하는 장편소설에 대한 논의도 흥미롭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장편소설이 나오는 토양은 글 쓰며 견디는 ‘전업작가’가 많아야 발전하는 건데 요즘은 좀 알려졌다 하면 문예창작과 교수 자리가 나 주저앉아버린다”고 문학계의 안일한 풍토를 꼬집었다. 또 그는 “문학 위기는 소비자보다 생산자 측에 책임이 더 크다”며 “오늘날 우리 문학은 서사와 현실을 등한시한 채  대중에 대해서는 고답적인 ‘겉멋’으로 버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문예지들이 소설가들에게 단편소설을 청탁하니까 우리는 단편소설만 쓰는 것”이라며 “문학제도가 작가들에게 장편소설을 요구하면 작가들은 장편소설을 쓰게 돼 있다”고 현실적으로 진단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한겨레」)도 “한국소설의 지나친 단편 편향은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한 왜곡된 문예지 및 문학상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독자 대중의 선택과 판단에 더 좌우되는 장편소설을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들도 우리 장편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으로 귀결된다. 평론가 정호웅씨는 김원일, 조정래, 이문열 등 중진들의 최근 장편을 분석하며 “이들의 작품이 형식실험이나 주제의 깊이 면에서 기존의 소설을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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