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윤성희

이럴 땐 매운 음식을 먹는 게 최고예요. W가 가방에서 매운 소스를 꺼냈다. 맞아요. 슬퍼서 울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매워서 울었다고 말하는 게 덜 쪽팔리잖아요. 고등학생이 냉면을 비비면서 말했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중에서

울고 싶어도 ‘쪽팔릴까 봐’ 그냥 울지 못하는 이들은 윤성희 소설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가출한 ‘고등학생’과 세 살 때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잃었던 ‘W’는 각자 부조리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부조리함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는다. 매워서 울었다고 말하는 게 덜 쪽팔리다니. 웃으면 안 되는데, 갑자기 ‘풉!’하고 웃음이 터진다.
윤성희는 인물들의 불행한 삶과 거리를 둔 채 이야기를 서술하지만 그 시각은 결코 차갑지 않다. 오히려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유머 코드를 찾아내고 그것을 슬프지만 재미있게 보여준다. 슬픈 이야기를 정제된 문체로 밝고 따뜻하게 전하는 윤성희만의 특징이다.

“왜 슬픔, 불행, 외로움, 쓸쓸함 등의 감정을 해소하려고 하죠?” 윤성희가 반문한다. 인간은 원래 불안한 존재인 것을.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그는 독자에게 외로움과 쓸쓸함을 즐겨보라고 권유한다. 가족, 애인, 친구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란다. 윤성희는 슬픔, 불행 등을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있는 대로 표현한 것일 뿐인데 슬프게 표현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밝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윤성희는 덧붙인다. “우울해하지 마세요! 원래 다 그런 거예요!”

나이에 비해 미성숙한 화자(話者)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도 윤성희만의 특징이다. 윤성희 소설의 인물은 대개 과거 지향적이거나, 또래들보다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윤성희는 이렇게 설명한다.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이 된다고 해서 정신연령도 한 살 더 먹는 것은 아니잖아요. 서른 살이 됐을 때 계속 스무 살이던 정신연령이 어떤 사건 때문에 갑자기 쉰 살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윤성희는 실제 나이와 다를 수 있는 다양한 정신연령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나이가 되면 꼭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 자신도 30대 중반의 친구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구태여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며 자신을 구속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결혼한 친구들의 집안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너무 지루해요. 다 드라마에서 본 이야기고, 모두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주위에선 윤성희를 ‘소년’이라고 부른단다. 윤성희도 그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른이 될 수 없는 소년의 이야기 같은 거 되게 좋아해요”라고 말하며 그가 소년처럼 웃는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윤성희는 이제 세 번째 단편집 『감기』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제 세 번째지만 단편집을 낼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첫 단편집 『레고로 만든 집』은 분위기가 조금 우울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 단편집 『거기, 당신?』에서는 소재는 비슷하게 가도 저만의 유머 코드를 넣어보려고 시도한 거죠.” 그래서 『거기, 당신?』은 『레고로 만든 집』의 분위기보다 한층 밝고 명랑하다. 우울한 소재와 명랑한 서술방식의 조합이랄까. 조금만 읽어봐도 “아! 윤성희!”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다.

새 책 『감기』에 대해 그는 “이제 고정된 틀을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그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들과의 방향성 없는 수다 같은 이야기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한창 수다를 떨다가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하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기도 하고, 또 그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 말이에요.” 『감기』는 일상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윤성희스러운’ 소설이지만 또 자세히 보면 고민 끝에 거듭난 또 다른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 될 것 같다.

더 많이, 더 끊임없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작가 윤성희.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마을 내리막길을 달리고 싶은 ‘소녀’ 윤성희. 그의 자전거가 스쳐 지날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그런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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