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성 교수(사회대 경제학부)

20년 후와 지금은 다른 세상, 하지만 여전히 '정답'찾는 학생들
안정과 위험의 경계를 넘어서는 '빌 게이츠'형 사람 필요해

시험 시간이다. 한 학생이 손을 든다. “선생님 이거 안 배운 건데요?” 초등학교 교실에서 생긴 일이 아니다. 서울대 경제원론 중간고사 시험 감독 중 겪은 일이다. ‘거시경제이론’ 첫 시간이면 한국은행 웹 사이트에서 데이터를 찾아 정리하는 숙제를 낸다. 시시콜콜한 이메일과 질문이 쏟아진다. “정해진 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 본인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적어내도록 해.” 한 학생이 씩씩하게 얘기한다. “답이 여러 개면 문제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서울대 경제학부에 부임한 지 3년째다. 우리 학생들은 모범답안에 너무 집착하지 않나 싶다. 학점 잘 받는 법, 유학 가는 법, 직장 선택 등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모범답안’이 돌아다닌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거시경제학 분야는 그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지금 교과서에 소개되는 내용들이 20년 후에는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지금 인기 있는 직장이 20년 후에도 여전히 최고의 직장일까? 필자 졸업 당시 가장 인기 있던 J은행은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인문ㆍ사회계열 학생 중 상당수가  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고시 기출 문제 모범답안을 갖고 오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글쎄 딱 부러지게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 ‘정답’을 기대했는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고시는 신분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에 우수한 인재가 계속 참여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전 세계가 앞다투어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시대에 20년 후에도 과연 공공부문이 사회를 주도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지워버릴 수 없다.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줄 사람은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공무원으로서의 빌 게이츠의 모습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자.

안정된 직장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개별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래야 한다. 같은 수익이라면 위험이 적은 곳에 투자하는 것은 합리적 경제주체의 당연한 선택이다.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체제의 역할이다. 그러나 현행 대학 입시제도는 위험을 기피하는 학생, 여러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학생에게 유리한지도 모른다. 5문제 중 4문제를 몰라도 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생은 살아남지 못한다. 100문제 중 95개를 ‘맞히고’ 5개를 ‘틀려야’ 명문대 진학이 보장된다. 우리 학생들이 고시에 쏠리는 현상은 모험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우리 대학에 들어올 확률이 높은, 경제학 용어로 자기선택(self―selection) 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아 울적할 때면 미술대학 야외 작업장을 찾곤 한다. 훌륭한 작품이 나오기 위해 버려진 조각상들을 보며 위안을 한다.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특목고 학생들에 관한 신문 기사를 종종 접한다. 훌륭한 학생이고 선망의 대상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6년간 가르친 경험에 비추어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아이비리그 입학생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우리 학생들과 그들이 졸업할 때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우리는 대학에서도 정답만을 추구하는 모범답안 인생을 강요하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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