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하는데,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앞으로 너희들의 인생 30년이 결정된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 짧은 '단언' 속에는 전국 수십만 수험생들이 불철주야로 대학입시에 매달려야 하는 '한국 사회의 진리'가 숨어있다. 대학생이면 한번쯤 이 '진리'를 뼈저리게 체험해 봤을 듯하다. '대학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십만의 학생들이 12년 동안 똑같은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을 보면 이 '진리'는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도 이 '진리'는 여전히 유효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위 비일류대학에 다니고 있는 사촌이 괜히 기죽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경험이 없다면 한번 상상해 보라.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상상만으로도 "무조건 일류대학만 가면 된다"는 이 '진리'가 '학벌주의'에서 파생된 것이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학벌주의를 두고 학교 안팎에서 말이 많다. 지난주 대학본부 앞에서는 '학벌없는사회전국학생모임' 등 6개 학생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운찬 총장의 이른바 '포퓰리즘'(populism) 발언을 학벌주의를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망언'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학벌주의의 병폐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정부는 범정부차원에서 '학벌주의극복을위한합동기획단'을 구성했다고 한다. 또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SKY 안 가기 운동'이라는 학벌타파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등 학벌주의에 대한 개혁노력은 꾸준히 확산되는 추세다.


그러나 정작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학벌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가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오히려 은근히 '학벌'에 기대 출세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봐야 할 실정이다. 

 '학벌주의'에 내재해 있는'잠재적 피해 가능성'을 잊지 말아야

그러나 예비 사회인들이 학벌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나 사회 전체를 위해서나 지극히 합리적인 일임을 알았으면 한다.

학벌 타파는 사회에 공정한 경쟁의 틀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학벌주의라는 말은 '같은 학교 출신끼리 파벌을 이뤄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을 의미하고 절대적 평가의 기준은 '능력'이 아닌 '학연'이다. 소위 일류대 학생들은 학벌로 얻을 수 있는 '부당한' 이익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벌주의는 일류대학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들도 언제 피해를 입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학벌주의의 수혜자가 되길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도 예외일 수 없는 학벌주의의 '잠재적 피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미래에 학벌로 얻을 이익과 피해를 미리 계산할 수 없다면, 공정한 경쟁의 틀을 확립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학벌주의의 또 다른 측면에는 '학벌이 곧 능력'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러한 인식 아래 학벌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상표'의 역할을 해왔다. 인간을 상품화하는 그 시각도 큰 문제지만 이 역시 합리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상표만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을 '합리적 소비자'라고 하지 않는다.


옛 성인들은 "다스리는 사람(治者)은 항산(恒産)이 없어도 항심(恒心)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교육철학이 존경받는 지도자 육성이라면, 학생들과 함께 '학벌'이라는 '허구의 기득권'을 부수는데 앞장서는 것은 어떤가.

김영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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