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기 교수 (음대 작곡과 이론전공)

방학 내내 학력위조와 관련된 폭로와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이 더욱 길고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학력위조 사건이 모 대학교수로부터 시작되었고  주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학력위조의 주인공이다 보니 음악대학 교수인 나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그나마 선진국에서도 학력위조가 적지 않다고 하니까 그것으로 억지 위로라도 해 보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롭게 터지는 폭로 기사는 그러한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은 채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눈물을 흘리며 젊은 시절의 실수를 고백하는 인사들을 보면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하는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이들이 우리나라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는 학벌 지상주의의 피해자라는 주장에 이르면 혹시 우리가 이 분들을 너무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까지 하게 된다.

거의 모든 언론 매체는 학력위조 사건을 다루면서 개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더욱 본질적인 문제점으로 우리 사회의 학력 만능주의를 지목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려면 학력이나 졸업장을 중시하는 학벌사회가 사라지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결론은 하도 단호해서 감히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든다. 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학력이나 학벌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력이나 학벌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학력은 실력과 무관한 것인가?

대학 문턱을 밟지 않고서도 훌륭한 영화감독, 소설가, 음악가가 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술분야라 할지라도 끼와 영감만 가지고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는 없다. 음악교육을 받지 않고도 악상만 떠오르면 순식간에 악보에 쏟아내서 명곡을 탄생시키는 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화성과 선율의 구성 원리와 음악 형식이나 양식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사에서 최고의 천재로 알려진 모차르트도 누구보다 철저하고 고된 음악 훈련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음악을 포함한 예술 역시 과학적인 학습과 가르침이 필요하며 그 자연스러운 결과가 학력이나  학벌이다.

학벌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은 그 나름대로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학벌이 없는 사회는 모든 학교와 학생들이 좋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가능하다. 명성이 있는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인생에서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학교를 다니면서 실력이 쌓이고 그래서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실력을 사회가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력에 따른 진정한 학벌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벌이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학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학벌이 아니라 실력 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란 결국 학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로 실력이 증명될 수 있는 사회다. 진정한 학벌사회가 실력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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