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야돌리드 논쟁

바야돌리드 논쟁

장 클로드 카리에르 지음┃이세욱 옮김┃샘터┃1만원

 

아메리카 인디오는 과연 인간인가. 터무니없는 질문으로 보이지만 이는 1550년 유럽을 뜨겁게 달군 논쟁의 주제이다. 유럽인들은 1492년 신대륙 발견 이후, 인디오를 ‘신이 유럽인에게 준 선물’로 여기며 강압적으로 지배한다.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한 것이다. 그러나 유럽 내에서 도미니크 수도회의 라스카사스(Las Casas, 아래 그림) 수사를 중심으로 반성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인디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므로 폭력과 악행은 금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결국 ‘인디오는 인간인가?’라는 철학적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디오의 인권을 주장하는 라스카사스와 인디오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는 세풀베다(Sepulveda)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프랑스 작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Jean-Claude Carriere)는 1년여간 서신으로 벌어진 이 논쟁을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5일간의 대면 논쟁으로 극화한다.

소설에서 세풀베다와 라스카사스는 교황 특사의 주재 아래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논쟁을 시작한다. ‘바야돌리드 논쟁’이란 명칭은 이 장소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풀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적 노예상태’ 이론을 끌어들인다. 인디오는 스스로 판단조차 할 수 없는 미개한 노예상태이므로 주권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라스카사스는 수년간 인디오와 함께 생활하며 관찰한 결과, ‘인디오들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고유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며 가르침과 설득으로 교화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 펠릭스 파라(Felix Parra)의 「라스카사스 신부」(1875)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제 자체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디오의 인권을 주장하는 라스카사스조차도 유럽이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다만 그 방법론이 달랐을 뿐이다. 세풀베다는 무력을 사용해 인디오를 효과적으로 굴복시키자는 견해를 드러낸 반면, 라스카사스는 신앙 전파와 교화라는 온건한 방법을 제시했다.

마침내 교황 특사가 결론을 내린다. “인디오는 인간이며 폭력적인 통치를 해서는 안된다. 대신 더 하등한 아프리카의 노예를 착취하는 것은 허용한다.” ‘인권’에 대한 라스카사스의 부르짖음이 수포로 돌아가는 대목이다. 이 결론은 유럽중심주의라는 시대적 한계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책에서 드러나는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은 현실에서 자행되는 여러 사건과 그 맥락이 유사하다. 겉은 그럴듯한 명분과 논리로 포장되지만 본질에는 인간의 탐욕이나 상대에 대한 우월감이 내재돼 있는 사건들이 그렇다. 먼저 18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던 모습을 들 수 있다. 이 국가들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곤 했다. 좀더 현대로 눈을 돌리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세웠지만 실은 석유 확보를 위한 것이었음은 자명하다. 이 책을 번역한 이세욱씨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불합리한 상황을 고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바야돌리드 논쟁이 벌어졌던 시대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고리타분해 보일 수도 있는 500여년 전의 논쟁을 주목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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