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이동진(영화평론가)

시간

칼하인츠 A.가이슬러 지음┃박계수 옮김┃석필┃1만 2천원

▲ 사진제공 : 로이터 통신

예전에 독자가 직접 우편으로 보내온 긴 편지 속 한 구절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다 좋은데, 당신의 글은 왜 그렇게 슬프고 비관적이냐”는 말이었다. 글쎄. 물론 그것은 나의 타고난 본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시간에 대한 태도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과거밖에 없다. 시간이란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인식될 때는 항상 과거라는 형식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각하기에 너무 짧은 현재는 찰나로 경험되는 순간 과거의 영겁 속으로 사라져버리며, 미래는 파편 같은 현재를 거쳐 과거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을 맺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그 현재라는 시간의 파편이 지니는 현기증 나는 스피드에도 불구하고, ‘느리게 (현재를) 사는 법’이라니. 칼하인츠 가이슬러의 『시간』은, 이를테면 시간이 우리 곁을 흘러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 속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책이다. 현재에 집중하는 저자의 시간관에 온전히 동의하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의외로 깊이와 재미가 대단해 점차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이 책의 내용은 시간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기보다는 어떻게 시간 속을 통과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경시론(經時論)에 가깝다. 일종의 문명 비판서이기도 하다. ‘리듬’과 ‘느림’으로부터 ‘기다림’ ‘휴가’ ‘걷는 시간’까지 모두 2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시간에 대한 동서고금의 갖가지 레퍼런스를 붙여가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서술해나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인용사례들과 지은이 자신의 시간관이 마치 대화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리듬을 이루며 한데 엮였다는 데 있다.

이 책에서 차용되는 인용구들을 읽는 재미도 상당한데, 토마스 만의 『마의 산』부터 괴테의 여행기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헝가리의 우화와 오스트리아의 격언, 그리고 비틀즈의 노래 가사에까지 이르는 구절들은 그 인용의 적절함과 내용의 풍부한 함의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가이슬러는 심지어 하나의 장을 시(詩)로 맺는 서정성도 보여준다. 다음 문장은 이 책이 어떤 스타일의 책인지를 그대로 요약한다. “시간이라는 기차에서,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앉아서 성급한 진보에 몸을 내맡긴 많은 사람들은 창문을 조금만 열어도 바람이 얼굴에 심하게 부딪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반대 방향으로 앉아 있으면 창문을 연 채 갈 수가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고교 시절 접했던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란 책 내용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러시아의 한 과학자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는데, 그는 최대한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분 단위로 시간표를 짜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 책은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시간을 절약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던 사람이었기에 그 과학자가 그토록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순진하게도, 당시의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박약한 의지를 한탄하며 열등감만 한껏 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가이슬러의 ‘시간’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처럼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자책하게 만드는 ‘나쁜 금언’들의 위력을 저주하면서도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해독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피터 드러커의 “시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것들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이다” 같은 발언의 강력한 자장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게으름뱅이의 성전(聖典)’같은 책이니까. 시간은 다뤄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대형서점에 가보면,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선 시(時)테크를 제대로 해야 뒤쳐지지 않을 수 있다고 외치는 수많은 허접스런 처세서적들 중에서, 의외로 ‘느림의 철학’을 말하는 책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한때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베스트셀러 『느리게 산다는 것』이란 책부터, 『느림의 지혜』,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같은 책, 독일 작가 나돌니의 80년대 히트작 『느림』까지 정말 많은 서적들이 번역되어 나왔다. 이런 책들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만큼 우리가 아찔한 속도로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책인 『느리게 산다는 것』이 정말 슬렁슬렁 프랑스적으로 진행되는(저자도 필시 게으름뱅이임에 틀림없는, 동어반복적이라서 심하게 말하면 한 챕터만 읽어도 되는) 전형적 에세이 형식인 데 비해, 독일 책인 『시간』은 독일인이 지은 책답게 무척 조직적이고 체계적인(그래서 적어두고 싶은 구절도 많고, 다 읽고 나서도 괜히 뭔가 많이 남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저작이라는 점이다. 난 『느리게 산다는 것』은 중간쯤까지 보다가 책을 던져버렸지만, 『시간』은 단시간에 완독했다. 그렇다면 사실 나는 ‘느림의 철학’에 동조하는 척하면서도, 독서에 있어서, 나아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여전히 조바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이동진씨(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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