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하진 지음┃왕은철 옮김┃시공사┃1만 2천원

미국문학의 중심부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중국계 작가 하진. 그는 최근 쑤퉁, 모옌 등과 더불어 국내 출판계의 중국소설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작년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후 그의 작품들이 속속 번역돼 왔다. 지난 5일(수) 그의 소설로는 다섯 번째로 『광인』이 출간돼 화제다.

하진은 모국어로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는 영어권 작가다. 미국 유학 도중 ‘텐안먼 사건’이 터져 미국에 정착한 그는 등단 후 ‘전미도서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었다.

『광인』은 주인공 ‘지안’의 지도교수인 양 교수가 급작스레 쓰러지며 시작한다. 베이징대 박사과정을 준비 중인 지안은 학교의 부탁으로 헛소리를 하는 양 교수를 돌보게 된다. 간병하는 동안 지안은 양 교수가 쓰러진 데 의문을 품게 되고, 대학 내 정치적 음모 등 밝혀지는 진실 앞에서 괴로워한다.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지안은 양 교수의 고뇌를 떠안게 되고, ‘텐안먼 사건’이라는 거대한 역사와 만나게 된다. 작가는 젊은 지식인인 지안의 내적 갈등을 담담한 문체와 몇 겹의 상징으로 풀어낸다.

하진은 정치적 담론을 전면에 내놓지는 않으나,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역사적 흐름을 이끌어낸다. 책을 옮긴 왕은철 교수(전북대ㆍ영어영문학과)는 “작가는 비판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관심에 서사의 동력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한편 지난달 하진의 첫 번째 장편 소설 『기다림』이 소설가 김연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이 작품은 문화혁명 중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한 군의관 ‘린’의 이야기로,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중국 사회를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가 신경숙은 “하진의 작품을 읽어보면 특히 지금의 중국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며 다른 나라로 나가야만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중국 작가의 역설적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진의 소설은 통제돼 온 역사적 현실을 흡인력 있는 서사와 섬세한 감정으로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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