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1세기의 사유들 ④ 알랭 바디우 - 홍기숙 강사(숭실대ㆍ철학과)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극작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1937년 모로코 태생으로, 파리 8대학과 파리사범고등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커다란 흐름을 ‘진리’와 ‘체계’의 붕괴로, 혹은 니체의 영향 이후 반(反)플라톤주의적 경향의 지배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알랭 바디우의 사유는 그 반대진영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진리’와 ‘보편성’을 주장하는 플라톤주의적 전통, 혹은 이성적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데카르트주의적 전통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디우는 자신의 주요 저서인 『존재와 사건(L'Etre et l'e′ve′nement)』(1988)에서 수학의 집합론에 근거를 둔 ‘순수다수(le multiple pur)’로서의 ‘존재(l'e^tre)’를 말한다. 사실상 ‘수학’을 통해 ‘존재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이 서양철학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수학의 역사’를 ‘존재 물음의 역사’와 동일시하면서 존재론을 펼치고 있는 바디우의 사유는 철학 내에서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철학이 ‘존재’에 대한 물음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디우는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연장되거나 구별되는 지점으로서 ‘진리’의 영역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그가 프랑스 68년 혁명을 경험한 세대이며, 특히 마오주의자였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존재와 사건』 후반부에서 바디우는 ‘순수다수’인 ‘자연적 존재’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역사성을 특징으로 갖는 ‘일자를 넘어서는 것(l'ultra-Un)’으로서의 ‘사건적 진리’에 대해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바디우는 ‘진리’를 주장하기를 꺼려하는 이 시대에 비록 지엽적이지만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서 ‘진리’를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인식되고 있던 ‘진리’, 즉 유한함에 대립되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영원성으로서의 ‘진리’가 이제는 바디우에 의해 국지적이며 복수적인 이름으로서의 ‘진리’로 다르게 그려진다. 이러한 바디우의 ‘진리’에 대한 일종의 당위적 책임감은, 이어서 ‘윤리’의 문제나 ‘주체’의 문제에서도 새로운 접근을 통해 이전의 전통적 개념과는 단절된 모습으로,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이미 드러나 있었지만 비로소 개념화된 새로운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진리’나 ‘윤리’에 맞서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사건적 진리’,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fide′lite′)’으로서의 ‘윤리’, ‘주체’란 무엇인가? 옳음에 대한 당위성을 말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그래도 지엽적이고 한시적이지만 보편성을 갖는 ‘진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어떤 철학적,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가?

모든 철학이 그 시대의 현실적 상황을 자신의 철학적 물음의 기본 출발로 삼았다는 점은 ‘지금(maintenant)’과 ‘여기(ici)’를 중시하는 실천적 철학자 바디우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모든 절대적 가치가 무너지고 ‘다양’과 ‘차이’만이 강조되는 현 상황에서, 바디우는 ‘진리’와 진리과정에 수반되는 것으로서의 ‘사건적 주체’를 주장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있음(존재일반)의 이름인 다름(차이)’이 아니라, 무엇인가 특별한 사건적 진리에 충실해 우리의 삶을 예기치 못하는 특별함으로 바뀌게 하는 ‘같음’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음’은 다름과 구별되며, 유일하게 ‘다름’에 무관심하며, 무엇인가에 충실하게 하는 ‘주체’를 형성하며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게 하는 ‘진리의 이름’인 것이다. 우리에게 ‘다름’이나 ‘차이’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의 모습이지, ‘같음’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녀 추구해야 하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디우의 ‘사건적 진리’에 대한 사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유가 팽배해 있는 현 시대에, 다시 말하자면 ‘진리’나 ‘주체’를 더 이상 주장하려하지 않는 현시대에, 그럼에도 소위 변화된 세계를 인정하면서 그 위에 자신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출하며 개입하고 있는 실천적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디우에게서 ‘진리’와의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서의 ‘주체’란 무엇인가? 우리가 ‘우연’의 이름 하에 맞이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에 충실할 때, 그 우연적 사건은 주체를 진리과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 다시 말하자면 바디우의 ‘주체(sujet)’란 ‘주체화의 과정(subjectivation)’과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주체는 진리를 수반하는 ‘사건’ 이전에 미리 존재할 수 없으며, 진리가 복수인 것처럼 주체 또한 ‘복수’의 형태로 생성된다. 말하자면, 어떠한 ‘진리’나 ‘윤리’, ‘주체’도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백과사전적 지식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서, 새로운 것의 완전한 출현으로 나타난다.

그간 강한 정치적 저항의식을 가져왔던 우리의 역사적인 특수함을 고려해 볼 때, 또 그 반대급부로서 항시적인 안정추구를 위해 여러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작용돼 왔던 지난 시절 지배질서의 담론과 그 역학관계를 확인해볼 때, 알랭 바디우의 철학적 사유는 우리사회의 도덕담론이나 지배담론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해체론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형태의 대안이 아닌 변화와 미래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있음’의 이름이 ‘차이’와 ‘다양’이라는 그의 사유는 서양 고전적 철학의 맥을 잇는데, 이는 우리에게 ‘평등’에 대한 당위성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동시에, 비록 한시적이고 지엽적일지라도 보편적인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추동의 힘을 사유할 수 있게 한다.

▲ 홍기숙 강사(숭실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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