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톤 캐스 교수 초청 강연회 참관기 - 김응산(비교문학 협동과정ㆍ석사과정)

▲ 안톤 캐스(UC버클리 독문학 및 영화학 교수)

지난달 20일 비교문학 협동과정과 독어독문학과의 공동주최로 작지만 의미 있는 학술강연회가 열렸다. 『옥스퍼드 영화사』의 공동저자로 잘 알려진 안톤 캐스(Anton Kaes) 교수가 방한해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한 신역사주의적 분석을 펼친 것이다. 문학이론, 영화이론, 영화사 및 문화학 전반에 걸쳐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는 안톤 캐스는 현재 UC버클리 독문학 및 영화학 교수로서 미국에서 손꼽히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강연은 1920년대 독일의 대표적 표현주의 영화인 「노스페라투」를 중심으로 당시 독일 국민이 직면해야 했던 전쟁과 죽음의 트라우마, 그리고 영화가 담지하고 있는 역사적 무의식에 관해 고찰해보는 자리였다. 강연자는 원고를 일방적으로 읽지 않고 풍부한 부가설명을 곁들이거나 강연 도중 질의와 응답을 주고 받으면서 편안하고 여유있는 강연을 진행해 참가자들과의 상호소통을 모색하는 자세를 보여줬다.

‘엄밀히 말해 모든 영화는 역사 영화’라는 그의 테제는 이번 강연을 꿰뚫는 한 마디다. 스스로 문화사학자의 입장에 서 있다는 그는 영화 텍스트 이면에 은밀하게 위치한 역사적 무의식을 밝혀내는 작업,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이번 강연도 역시 「노스페라투」의 내러티브 자체가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욕망과 심리를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영화는 기본적으로 전쟁과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실생활에서의 범죄나 살인 등을 ‘억압’하는 반면 이것들을 다룬 할리우드 액션이나 공포 영화에는 열광하듯 당시의 독일인 역시 전쟁과 죽음의 트라우마를 침묵의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 한편 영화라는 매체 위에 이것들을 다시 펼쳐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미시적인 시각으로 영화 텍스트의 결을 따라 꼼꼼한 분석을 행했는데, 예를 들어 오를록 백작의 성으로 떠나는 주인공 후터의 모습에서 동부전선을 향해 떠나는 자원병들의 모습을 읽어내고, 흡혈귀가 마을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외부 세력이 침략해 전쟁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당시 독일민족의 히스테리를 읽어낸다.

한편 영화의 말미에 자신을 희생해 마을 전체를 구하는 여인 엘렌의 모습에서 그는 1차 대전 이후 독일에 세워지기 시작한 전쟁 기념비의 알레고리를 찾아낸다. 아울러 그는 1차 대전 당시 수많은 독일 젊은이들이 ‘안정되고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전장에 자원했던 일화를 프로이트를 끌어와 분석해 내는 등 영화와 사회 현상에 대한 역사적, 정신분석적 독법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흡혈귀를 다룬 이 작품에 빗대어 영화의 매체적 속성에 대해 논의한 부분 역시 탁월했다. 필름은 살아있는 생명을 ‘빨아들여’ 그 사람이 죽은 이후에도 그를 스크린 상에서 영원히 재생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 매체 자체가 본질적으로 흡혈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또한 태양에 노출돼 죽음을 맞는 노스페라투는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그 생명력을 잃는 셀룰로이드 필름에 대한 은유이며, 따라서 영화사 초창기의 매체에 대한 풍부한 인식을 보여주는 탁월한 장면이라는 설명이 잇따랐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짧은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민은경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서양에서의 고딕 장르 전통의 함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고딕 장르와 젠더문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참신한 시각을 제시했고, 최윤영 교수(독어독문학과)는 여주인공 엘렌이 자신을 희생하여 모두를 구하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향후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인 독일민족이 그들도 일종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의견을 은연 중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본의 경우를 들어 날카로운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연과 토론에서의 큰 ‘수확’에 비해, 학생들의 참여가 기대 이하로 저조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기실 1990년대 이후로 영화 매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대한 데 반해, 학내에서 영화 관련 학술행사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국제행사의 경우엔 이번처럼 강연과 토론이 외국어로 진행되는 등 학부생들의 접근성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대학과 학술 관계자들의 관심이 모아져 교수 및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학부생들에게도 이번 강연과 같은 기회가 두루 확대되기를 바란다.

▲ 김응산씨(비교문학 협동과정ㆍ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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