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입는 거 바라지 않아 ㆍㆍㆍ 그냥 생계 걱정만 없게 해 달라"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왔다지만 박사과정생과 연구생들에게 공부는 직업과 마찬가지”라며 “교내 장학금이나 BK21 지원금을 통해 월 70~90만원 상당을 받더라도 이 돈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박유천씨(사회대 석사수료·가명).

대학생활문화원(대생원)이 지난달 10일, 학부 및 대학원 졸업생의 대학생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발표한 ‘효과적인 대학교육 정책 수립을 위한 보고서(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 중 경제문제와 진로문제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공부하는 동안에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다. 이우리씨(인문대 박사과정 1년차·가명)는 “박사 학위를 받고서 진로가 확실하다면 이 정도 고생은 감내할 수 있다”며 “박사가 됐지만 임용이 안 되는 선배들을 보면 갑갑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불투명한 진로문제로 그들의 삶은 오늘도 힘겹다.

◆서울대 박사, “경제적 고민 아닌 학문적 고민하고 싶어요”=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원생의 학비충당 방법은 ‘부모님 혹은 가족’이 3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밖에 취업 및 아르바이트 24.6%, 교내·외 장학금 14.3%, 연구 및 프로젝트 참여 17.5% 등으로 드러났다.

박유천씨는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아 장학금이나 프로젝트 등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책값이나 가족 부양까지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우수대학원생 지원 장학금(GSI 장학금)’의 지원액수마저 올해부터 발전기금 재원부족으로 6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장강훈씨(사회대 박사 2년차·가명)는 “개인 생활도 빠듯해 결혼은 물론, 많은 것을 미뤄둔 상태”라며 “소주 한 잔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장학금이나 자력으로 학비를 마련하는 60%에 가까운 대학원생들은 BK사업 지원비, GSI 장학금이나 강의 및 연구 보조, 조교 등의 학내 취업과 과외 등에 의존하고 있었다. 연구생들은 이와 같은 학업 외 일로 논문이 늦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인문대 조교로 일하고 있는 이우리씨는 “학교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행정적인 잡무처리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GSI 장학금은 교수 한 명 당 한 명의 대학원생에게만 지급되기 때문에 대학원생들끼리 경쟁을 하고 있다. 이번 학기 인문대의 한 학과에서는 GSI장학금 경쟁으로 대학원생끼리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인호 교수(경제학부)는 “박사과정이나 연구생들이 GSI 장학금이나 BK사업 지원금을 받더라도 생계를 꾸리기에는 터무니없는 액수”라고 말했다.

◆어렵게 박사학위는 땄지만…=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생들에게는 막상 박사 학위 취득 후 진로도 막막한 상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박사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답변 중 ‘미정’이 15.4%로 나타났고 사회대의 경우는 이 수치가 무려 50%에 육박했다.

전공에 따라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교수임용심사에서 국내 박사보다 국외 박사학위 소지자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대의 한 교수는 “아무래도 해당 학문의 본고장에서 공부를 했다는 점, 외국 현지 생활로 언어문제가 해결됐다는 점을 감안하기 때문에 국외 박사 소지자가 교수임용에서 유리하게 평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국내 박사들은 교수 자리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시간강사를 하며 교수로 임용되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사회대 박유천씨는 “이런 사실은 연구생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졌다”며 “서울대 등록금도 많이 올랐고 유학을 가는 사람은 대부분 장학금을 받고 가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기까지의 비용이 거의 비슷해 나중에 임용이나 취직을 생각해서유학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공대 연구생 문장충씨(공대 박사과정수료·가명)도 “공대에서도 서울대 박사는 학위를 따더라도 임용이 정말 어렵다”며 “임용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공대는 산학장학금 등으로 지원을 받으면 연구하는 동안은 학비가 해결되고 학위 취득 후에는 직장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기업체에서 서울대 공대 박사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인문대나 사회대보다는 진로의 폭이 넓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대성씨(인문대 박사과정수료·가명)는 연구생들의 진로에 대해 “인문대의 대다수 전공은 시장에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체의 수요가 적어 진로도 교수임용으로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나=박사과정생과 연구생들은 해결책으로 하나같이 ‘대학원생 재정지원 확충’을 들었다. 박유천씨는 “연구생들은 공부가 직업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장충씨는 “잘 입고 잘 먹으며 공부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생계 걱정만 없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원장 권두환 교수(국어국문학과)는“사회적 수요가 적은 인문·사회대의 학문은 박사급 전문인력이 박사 학위 취득 후에도 계속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대학과 정부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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