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교수(인문대·서양사학과)

장터’뿐인 축제는 그만 
‘범생이’보단 ‘리더’되야
지성과 개성 길러야
진정한 ‘리더’ 될 수 있어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 찾아왔다. 대학의 축제는 젊은 지성들의 발랄한 재기가 빛나는 놀이의 한마당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대학에서 축제 기간 동안의 행사를 보면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장터’라는 이름의 행사다. 수많은 학과와 동아리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장만해서 학생들에게 판다. 어떤 때는 좁은 장소에 서너 개의 장터가 동시에 벌어지고, 흥을 돋우려는 이유이겠지만 학생들이 큰소리로 자기 장터의 음식을 자랑하며 ‘호객 행위’를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자문하곤 한다. 순대 팔고 파전 굽는 것이 대학 문화일까?

사실 ‘장터’ 자체를 굳이 비판할 이유는 없다. 때로는 철거민의 아픈 현실에 공감하여 그들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병마에 시달리는 동기생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하는 뜻깊은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너무나도 즐겁게 일을 한다. 익숙지 않은 음식 준비를 하다 보니 덜 익거나 타거나 맛이 이상하게 되어버리거나, 심지어는 재료가 다 떨어져서 파 대신 잔디를 집어넣은 불량음식을 판 일을 두고두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곤 한다. 의미 있고 모두 재미있게 일을 한 소중한 경험이니 이를 두고 뭐라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오랜 기간 정말 변함없이 똑같은 일을 한다는 데에 있다. 이것 말고 더 나은 행사는 없을까? 자기네들끼리 음식 만들어서 자기네들끼리 사서 먹고, 대낮에 막걸리에 취해서 고성방가하는 것이 진정 대학문화의 대표적인 행사여야 할까? 맨날 ‘장터’만 열 것이 아니라 지성과 재기가 빛나는 행사를 할 수는 없을까?
그런 점에서 우리 학생들이 기획능력이 모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중요한 일을 창안해서 이루어내려면, 우선 아이디어를 내고 사람을 모으고 돈 문제를 해결하고, 또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런 일들을 추진해야 한다. 리더십이라는 것이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이런 것을 통해서 발현되고 길러지는 것이다.

미국 대학에 방문학자로 있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 유학생에 대한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 요점은 한국 학생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지나치게 ‘범생이’라는 것이다. 모두들 도서관에 박혀서 공부만 열심히 하고 그래서 학점도 높게 나온다고 한다. 이것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서 일하는 것도 잘 해야 한다. 우리의 초중등 교육만이 아니라 대학 교육에서도 학생들을 그런 식으로 유도한 것이 아닌지 나 스스로 반성하는 바이지만, 우리 학생들이 너무 소심해진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한국 유학생들은 매일 자기 공부에만 몰두하다가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서 밥 먹고 다시 도서관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이래 가지고는 좋은 ‘참모’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을 이끄는 진정한 ‘리더’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미국 대학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우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으나 분명 귀담아 들을 부분이 없지 않다고 본다.

이제 순대와 파전은 그만 작별을 고하고, 지성과 개성이 마음껏 발휘되는 일들을 꾸며 놀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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