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해로 연기되었던 남북정상회담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됐다. 이번 회담은 회담 개최 소식부터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이르기까지 환영 일색일 뿐이다. 하지만 선언문을 채택한 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이 글을 쓰는 지금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난 과거 역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잘 짜여진 각본의 ‘쇼’를 보는 듯한 느낌 때문이리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쪽엔 투자의 기회, 북쪽엔 경제회복의 기회’가 되는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을 밝혔다. 그리고 구상에 걸맞게 이번 회담에서 경제특구건설 등의 내용을 선언문에 담으며 경제협력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모 포털 사이트에서는 남북경제협력에 대해 ‘퍼주기인가 윈-윈인가’를 둘러싼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경제성장이 되는가라는 물음은 결코 경제협력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북한 내 노동유연화 전략을 관철시키며 더욱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북한을 자본주의 시장으로 포섭하기 위한 전략, 곧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경제협력의 본질은 아닌지 의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이 선순환적 관계를 맺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나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이를 긍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간 협정’이나 ‘국제법’이 결코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같은 ‘합의’가 곧바로 평화의 최종 담지자가 될 수 있는가, 더구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평택을 전쟁기지로 내주었던 노무현 정부의 야누스적인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선언문 안에 가둔 평화와 통일의 의지가 그 자체로 한판 쇼는 아닌가, 두고 볼 일이다.

우리는 남북한 민중의 생존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이번 회담 및 선언과 관련해 한껏 고무된 희망 뒤편의 ‘정상회담의 본질’을 직시하며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인문대 학생회장 려목 서양사학과·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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