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한국에서 42500원, 미국에서는 9150원

▲ 그래픽 : 차주영 기자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미국인 마이클씨(25). 그는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다가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한 권이었던 책이 5권으로 나뉘었고, 가격 또한 8천5백원씩 총 4만2천5백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미국에서는 9.99달러(9천150원)에 살 수 있었다. 심지어 양장본도 미국에서는 34.99달러(3만2천원)였다. 한국의 책값은 왜 이렇게 비쌀까?

◆편향적인 양장본 출판 관행=한국에서 출간되는 책은 비싼 코팅지로 만든 양장본의 비중이 높다. 지난해 한국 출판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 문학 서적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문학동네’ 편집부 팀장 김지연씨는 “기본적으로는 책의 내용에 걸맞은 디자인을 채택하지만 독자들이 고급스러운 책을 원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양장본으로 출판하면 제작비가 상승하기 때문에 수익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재생지 생산을 포기한 ‘(주)페이퍼코리아’의 영업팀 과장 홍성민씨는 “재생지로 책을 만들면 원가를 낮출 수는 있지만 재생지로 된 책은 판매량이 적어 출판사에서조차 기피하기 때문에 생산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양장본과 재생지 책을 동시에 만드는 출판사 보리의 홍보팀장 조혜원씨는 “실제로 재생지 책보다 양장본이 더 많이 팔린다”며 “선물할 때나 진열해 놓을 때 가시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종진씨(언어학과ㆍ03)는 “책값이 보통 만원을 훌쩍 넘기 때문에 학생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며 “시각 요소가 적고 종이 질이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가격의 책이 많이 출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자의 다양한 욕구가 골고루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분권은 불가피한 현실?=한국에서 출판되는 외국서적은 종종 자국에서 출판되는 권수보다 많은 수로 출간된다. 한국에서 340만부나 팔린 소설 『다빈치 코드』도 미국에서는 한 권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두 권으로 출판됐고, 해리포터 시리즈 모두 미국에서는 한 권이었던 것이 한국에서는 3~5권으로 분권됐다. 분권 출판이 가격 상승에 일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출판사 ‘문학수첩’의 한 관계자는 “영어를 번역하면 기존 분량의 1.5배 정도가 된다”며 “분권을 하는 것은 조밀한 편집을 원치 않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성곤 교수(영어영문과)는 “분량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나 2권을 넘어서는 것은 로열티와 번역료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상업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책값 상승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저렴한 문고판 활성화 돼야=미국에서는 책을 출판할 때 양장본을 먼저 낸 뒤 보급판으로 ‘페이퍼백(paperback)’을 낸다. 일본에서는 문고판 출판이 활발하다. 한국에서도 1960~80년대 문고판 출판이 성행했으나 1990년대 들어서며 그 양이 현저히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 저렴한 페이퍼백 혹은 문고판 형식의 책을 발간하는 출판사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열린책들’은 올해 초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문고판으로 재출간했다. 가격은 기존 양장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천8백원이다. ‘한길사’도 곧 기존의 책과 신간을 모아 인문서 중심의 문고판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다. 또 지난 4월 ‘이제이북스’는 플라톤 전집 1차분 『알키비아데스1ㆍ2』,『뤼시스』등 세 권을 8천원~1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았다. 이제이북스 대표 전응규씨는 “많은 국민에게 보급돼야 할 교양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싼 값에 내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도서관의 책 소비 활성화 해야=하지만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문고판 출판을 출판사에 강요할 수는 없다. 현재 미국ㆍ일본 등 외국에서는 공공 도서관이 각종 출판물의 초판을 2천부 이상 소비해주고 있다. 반면 한국의 공공 도서관 수는 일본의 6분의 1수준이며 기존의 도서관조차 신간을 제대로 소비하지 못하고 있다. 출판사는 독자의 구매에만 수익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씨는 “한국에서도 공공 도서관이 출간된 책을 일정량 이상을 소비해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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