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후 훔볼트대에서 변화한 점은

93년부터 훔볼트대에 근무한 나는 통일 후 대학이 변화하는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었다. 동독 시절의 대학에서는 고등학교처럼 학생, 교수들에 대한 대학의 규율, 지도가 많았다. 또 학생 수가 적었다. 이런 방식이 자율적으로 바뀌고, 학생 수가 1만3천여 명 가량에서 3만8천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전의 동독 교원들은 어떻게 됐는가

많은 수가 나가야 했다. 특히 법학, 경제학, 사회학, 인문학 등의 분야가 심했다. 통일 직후에는 동독 교원들에 대한 임금차이도 있었다. 당시 서독에서 온 교수는 월급을 모두 받았지만 동독 교수들은 60%밖에 받지 못했다. 퇴직 교수들은 자본주의 사회이니 만큼 실업자가 되거나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현저히 대우가 나쁜 직업을 가져야 했다.

 

▲학생들은 문제가 없었는가

학생들의 사상적인 차이 때문에 문제가 된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어떠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아는 학생 중 동독에서 공부한 후 국회의장의 자문이 될 정도로 성공한 경우도 있었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통일 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말해 달라

통일 후 베를린에 있는 대학들의 재정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재정 문제가 베를린 내 3개 대학인 자유대, 훔볼트대, 베를린공대 중 하나를 없애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이어서 실제 그런 구상이 나온 적도 있다. 10여 년의 개혁으로 이제야 동독 지역 대학들이 자리 잡았으나, 최근에 학사제도 도입, 재정 악화 등 새로운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 다시 개혁에 힘쓸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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