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강사(인류학과)

마거릿 켄트의 연애와 결혼의 원칙

마거릿 켄트 지음┃나선숙 옮김┃황금가지┃1만2천원

마거릿 켄트의 저서 『연애와 결혼의 원칙(How to marry the man of your choice)』은 여성이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남성을 만날 수 있으며 또 그와 결혼할 수 있는지 소개하고 있는 일종의 연애ㆍ결혼 전략서다. 이 책은 남성들을 물색하는 과정에서부터 그 중 선택한 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단계별 매뉴얼로 여성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969년부터 1979년 사이에 자신의 ‘결혼 전략’ 강연 과정을 이수한 4백여명의 독신 여성들이 모두 4년 이내에 결혼했고, 그 중 대부분은 2년 안에 결혼하는 성과를 보이자 자신의 결혼 전략을 공식화해 출간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출간 후에는 미국에서 16주 동안이나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 올랐음이 자랑스럽다고 할 만큼, 그리고 ‘남편 아니면 환불’이라는 광고를 붙일 만큼 책에 대한 저자의 긍지와 자신감이 대단하다. 실로 이 책은 36개국에 번역, 출간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갖고 있다. 처음엔 필자도 이 연애ㆍ결혼서의 ‘성공적’ 측면에 솔깃했고 주위의 ‘노처녀’ 지인들도 덩달아서 한번 읽어보겠노라고 했다. 너무 중요하지만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원칙’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연애와 결혼의 원칙들을 아우르는 총칙은 대강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여성은 결혼하기를 희망한다. 여성은 경제적, 신체적, 지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한 개인이며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 있는 것이 낫기 때문에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결혼한다. 연애나 동거도 함께 있는 것이지만 결혼은 ‘함께 있기’에 대한 지속성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기에 더욱 추구될 만한 것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 여성은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결혼을 못하거나 그에 실패하는 것은 현명한 배우자 선택과 관계 지속에 필요한 원칙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의 핵심은 남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며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남성 다루기’다.



여기서 남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여성들을 위해 저자가 알려주는 일반적인 남성들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남성은 힘과 지배에 대한 본능적인 열망, 그리고 타고난 성적 공격성을 지닌 존재이며 그러나 동시에 이에 대한 과도한 추구가 갖는 위험을 본능적으로 자각할 줄도 알고 따라서 조절을 위한 노력도 하는 존재, 아울러 이의 성취가 여의치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므로 여성은 상대 남성에게 비판과 칭찬을 반드시 같이 해줘야 하며, 남성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사기를 돋우어 주는 식으로 남성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남성이 지배자적인 욕구충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새롱거리면서 남성에게 의존을 요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성의 필요와 요구를 잘 돌봐야 하지만 동시에 여성 자신의 독립성, 주체성, 자긍심도 잃어서는 안된다. 이를 상실한 여성은 남성에게 매력 없는 존재로 비쳐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지배자적인 남성의 욕망을 여성의 목적에 따라 여성에게 유리하고 현명한 방식으로, 그리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수용할 것을 여성들에게 권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 들인 이러한 여성들의 노력이 결혼을 통한 ‘안락함’이라는 보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연애와 결혼의 성공을 약속하는 이 책이 과연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친밀성 찾기의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연애와 결혼을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에 있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과 위안을 찾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연애와 결혼이라는 사적인 관계와 일상은 사실상 성간의 위계적인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갈등으로 점철되는 지극히 정치적인 영역이다. 예컨대 데이트 강간, 가정 폭력 등은 그러한 권력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하나의 전형적인 갈등 형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성들에게 결혼을 안락함을 보장하는, 친밀성 추구의 완성 지점이자 유일한 형태로 ‘신비화’함으로써 결혼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남성의 실체와 본질을 지배성이라는 특질로 재현하는 가운데 여성들에게 그런 지배자로서의 남성을 ‘똑똑한 여우’가 되어 섬세하게 만져 나갈 것을 주문함으로써 성간의 위계적 관계를 당연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오도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필자는 이런 책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이는 결혼이 갖는 가부장제적 성격, 여성 억압적 성격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결혼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두려워하고 결혼을 열망하는 여성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대한 궁금함이기도 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적했듯 사랑-친밀성 찾기를 통해 개인의 존재와 의미를 확인하는 데 안달이 난 현대사회에서 연애와 결혼의 영역은 마치 경력을 쌓는 일과 같이 적극적인 기획이 요구된다. 그 결과 연애ㆍ결혼전략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인데, 『연애와 결혼의 원칙』은 바로 그러한 종류의 안내서들 중 하나인 것이다.

이 책은 여성들의 친밀성에 대한 열망, 정서적 안정과 위안에 대한 추구에 주목하면서 그 친밀성의 대상인 남성의 모습을 낯선 것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그 낯선 모습을 해체시켜 여성 독자의 신뢰를 얻은 다음 ‘마음 사로잡기’처럼 주관적이고 불확실하게만 보이는 감정의 영역을 매뉴얼 형태로 객관화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여성들에게 성간의 평등하고 대등한 친밀성이 가능하고 그러한 친밀성이 주는 안락함이 결혼을 통해 완성된다고 말함으로써 친밀성과 결혼을 신비화하고 이를 통해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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