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세르반테스 문학상 수상자 세르히오 피톨 초청 국제 콜로키엄 참관기

“고아였던 어린 시절 내가 책을 통해 만난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은 기꺼이 나의 벗이자 스승이 되어줬습니다. 내가 성장하면서 만난 보르헤스, 알폰소 레예스, 옥타비오 파스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쉼 없이 빠져든 독서와 명상은 다른 예술 장르인 음악ㆍ미술ㆍ연극ㆍ영화 등 또 다른 예술 세계로 나를 인도했습니다. 비록 법대생으로 성장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번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교관이 되어 동서양의 여러 나라로 여행을 하게 됐는데, 그 수많았던 제 인생의 여행은 저의 결코 고갈되지 않는 글쓰기의 원천이 됐습니다. 지금처럼 나는 멕시코 밖에서 내 조국 멕시코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나는 멕시코인이기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돌아간 후에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해야겠지요.”

 


최근 학문의 전 영역에 걸쳐 학제 연구가 한창이다. 어떤 학문도 독야청청할 수 없다는 존재적 위기감이 타 영역과의 상생의 길을, 그리고 이를 통해 더욱 발전적인 또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을 꿈꾸게 한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볼 때 2005년 세르반테스 문학상 수상작가인 멕시코 소설가 세르히오 피톨(Sergio Pitol)의 문학인생은 이 시대의 우리가 주목해야 할 텍스트로 변모한다. 문학을 통해 인생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그의 선구적 비전은 현재 우리 문화가 지향하고 있는 다학제성 실현의 전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달 19일 서울대 스페인중남미연구소는 세르히오 피톨을 초청해 국제 콜로키엄을 개최했다.

세르히오 피톨 문학의 학제성. 이것이 콜로키엄의 주제였다. 그의 글에는 다양한 경험은 물론, 예술 전 영역에 걸친 사랑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가 쓴 수많은 장ㆍ단편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영어ㆍ폴란드어ㆍ러시아어 등의 문학 작품을 번역한 백여 권의 책들은 서로 얽혀있는 하이퍼텍스트로서 총체화된다. 또 마술적 사실주의로 대표되는 중남미 붐 소설류의 경향에 흔들리지 않고 전통적 글쓰기로부터도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하며, 타 예술 장르와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하는 자신만의 독자적 문학세계를 고집해 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콜로키엄은 크게 네 가지 국면으로 설명되는 피톨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면면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줬다. 먼저 그의 단편들은 주로 역사적이고 존재론적인 단면들에 대해 고민하고 그 서술에서는 몽타주라는 영화적 기법을 배합한다. 홍정의씨(서어서문학과ㆍ박사과정)는 “단편 「이카루스」의 경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을 구로자와 아키라가 영화화하면서 취했던 영화적 서술기법을 채택한다”며 “가시성의 제한적 조건은 파편성을 생산할 수밖에 없지만, 그 파편성의 총합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으로 진실을 희구하는 노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피톨의 초창기 장편소설에서는 열린 구조에 대한 고민이나 개별적 목소리를 가진 서술 화자에 대한 실험이 이어짐을 알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 마시아스 교수(서어서문학과)는 “피톨의 첫 장편소설인 「피리소리」는 피톨 문학의 근간을 이루게 될 여러 요소들의 실험실이 된다”며 “자전적인 목소리와 더불어 열린 구조와 미완의 결말, 다중적이고 중층적인 이미지에 대한 추구와 그에 대한 공포, 인간 번뇌의 보편성, 창작과 번역의 문제, 그리고 독자의 능동적 역할 등이 문제적으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그 이후의 소설들은 카니발적인 성격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멕시코 사회의 그로테스크한 면들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피톨이 추구한 여러 형식의 글쓰기, 예컨대 일기와 자서전, 에세이와 소설이 더욱 더 혼재되는 양상은 열림과 소통의 학제적 창조를 도모하는 국면으로 설명될 수 있다. 손지은씨(서어서문학과ㆍ박사과정)는 “피톨에게 문학은 곧 삶이고, 삶이 곧 문학”이라며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그의 모든 글 속에 쉼 없이 반영돼 삶과 문학의 혼재성을 그대로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피톨 역시 강연에서 자신의 삶 자체가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 간의 쉼 없는 가로지름이자 넘나듦이었다는 자전적 고백을 통해 모든 것은 모든 것의 총합으로서 존재한다는 문학과 예술관을 피력했다.

한편 “피톨의 문학은 내가 추구하는 문학적 원칙의 길잡이가 된다”는 올리베리오 코엘료(아르헨티나 작가)의 사적인 고백과 더불어 “피톨이 추구해 온 학제적 소통과 세계화의 노력은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구현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의 모태가 된다”는 레온 플라스센시아(멕시코 작가)의 발언은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피톨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시사한다.

떠남과 돌아감의 미학을 알고 즐기는 세르히오 피톨. 그는 삶의 모든 열정을 문학 안에 담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문학으로 융합되는 그의 인생 여정은 마지막을 그리지 않는다. 단지 문학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드러낼 뿐이다.

 

 

 

 

 

 


필자 최유정
서어서문학과ㆍ박사과정
서울대 서어서문학과에서 「무뇨쓰 몰리나의 역사인식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페인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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