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호 교수 (농생대 농경제사회학부)

농식품은 세 가지 특성을 함께 갖는다. 색깔 모양 크기 등 구입 전에 소비자의 탐색을 통해 나타나는 탐색재적 특성, 맛과 같이 소비를 해야만 드러나는 경험재적 특성, 그리고 안전성 기능성 환경성 등과 같이 소비 후에도 곧바로 알려지지 않는 신뢰재적 특성 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뢰재적 속성과 경험재적 속성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농식품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시장 실패 문제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은 품목이다. 그래서 각국은 엄격한 표시제도 운용을 통해 경험재적 속성과 신뢰재적 속성을 가능한 만큼 탐색재적 속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농식품 표시제도의 목적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 정보의 불균형을 줄여주는 데 있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표시에 대해서 소비자가 인식하고 그것을 믿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선진 농식품 표시제도를 거의 모두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표시에 대한 소비자 인식과 신뢰가 낮다는 것이다. 정부는 많은 운용 비용을 지출하면서 행정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소비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조사에서는 관련법규와 표시종류가 과다한 것이 소비자 인지와 신뢰도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런데 납득하기 힘든 정부의 이중적 제도 운용이 이를 부추기는 경우가 있다. 동일 목적의 중복된 제도를 두 부처가 시행함으로써 생산자의 이중적 행동을 유도하고 결국 소비자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사례가 지리적 표시제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리적 표시제도는 여러 가지 농식품 표시제도 가운데 하나다. 농산물과 그 가공품의 명성, 품질, 기타 특성이 본질적으로 특정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해당 농산물과 그 가공품이 그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특산물임을 나타내는 표시다. 특정지역의 자연환경과 그것을 농식품에 실현시킨 지역민의 노력은 공공의 재산이므로 관련 없는 자의 부당한 사용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종의 지적재산권이다. 이 경우 해당상품의 특정지역 생산자는 상품명과 함께 지역명칭을  배타적으로 쓸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9년 농산물품질관리법을 통해 이 제도를 운용해오고 있다. 그런데 2004년 특허청이 상표법 개정을 통해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제를 도입함으로써 지리적 표시 등록과 보호제도가 중첩되었다. 이렇다 보니 이를 신청한 주체는 “여기서 거부되면 다른 데 가서 등록하겠다”라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 부처에서 거부된 품목이 다른 부처에서는 허가되어 지리적 표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는 어느 기준을 믿어야 할까?

국내적으로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제기되었지만 이 제도가 가장 발달된 유럽연합과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한 국제적 쟁점으로 되었다. 유럽연합은 우리의 이중적 제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어느 것을 기준으로 협상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최근 유럽연합은 FTA 협정문 협상안을 농산물품질관리법상의 제도를 중심으로 작성하여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나라 두 부처는 각각 어떻게 대응할 지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FTA협상도 중요하지만 하루 속히 국내 생산자의 이중적 행동과 소비자들의 혼동이 해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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