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창 교수(의대 의학과)

서울대 의대는 1990년대에 의학교육 체제로서 기존의 의예과를 경유하는 보장형 2+4 제도에 개방형 4+4 제도(학사가 경쟁시험을 통하여 의학교육 입문)가 병행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의 학생 선발과 뒤늦게 의학교육에 뜻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함이었다. 서울대 의대는 4년 전 150명 중 50명으로 시작해, 현재 정원 135명 중 35명을 학사입학으로 받고 있다. 두 제도의 교육내용은 똑같다.

이러한 4+4 제도는 정부의 안이 되면서 ‘총정원’ 4+4 제도로 크게 변화했다. 고교 졸업생의 의예과 진입을 막아 대학입시 과열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그 기대효과도, 방법으로서의 타당성도 모두 의심스러웠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의 학생 선발, 부모가 아닌 자신에 의한 진로 결정, 성숙한 인간성, 미국의 예 등 표면적 이유가 있었으나 모두 전면적인 4+4 제도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의학교육계는 총정원 4+4 제도에 강력히 반발했으나, 정부의 재정 지원, 의대 허가 지역 제한 해제, 등록금 대폭 인상 묵인, 학생 선발 유연성 인정, 국립의대 교수 증원 등의 당근으로 일부 대학들이 조기에 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소위 ‘주요 의대’들의 전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교육부는 2005년에 채찍을 들기 시작했다. 서울대 의대가 전문대학원 전환을 하지 않을 경우 학사입학 정원 회수(당시 50명),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불허, 2기 두뇌한국21(BK) 사업 불허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오랜 논쟁 끝에 내후년까지 전문대학원을 시범운영하고 2010년에 의학교육 제도를 원점에서 재정립하는 절충안을 지난해 합의했다.

의학교육계는 교육부의 이러한 의견 변화를 ‘고집’에서 한발 물러난 ‘유연성의 수용’으로 평가했고 국가정책이 쉽게 백지화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이 타협안을 수용했다.

제도변화, 특히 강제적 제도변화에는 타당한 이유와 적절한 검토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부실했던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예상대로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학생 고령화, 높은 등록금과 입학준비금에 따른 경제적 약자의 불이익, 군복무 의무자에 대한 차별 효과, 우수 이공계 대학의 입시학원으로의 전락 등의 현상이 이미 나타났으며, 군의관 수의 심각한 부족, 의사의 경제적 이익 추구 경향 심화, 비인기 의학분야 인력 부족 악화 등이 예상된다. 비록 다양한 배경의 학생, 성숙한 학생, 자기 동기 유발 학생 선발에 약간의 효과가 있었으나 총정원 4+4 제도를 강제할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

서울대 의대는 총정원 4+4 제도에 반대한다. 전국적으로 정원 20~30% 정도의 4+4 제도를 반영하면 족할 것이다. 2010년 각 의학교육기관이 교육철학과 여건을 감안해 2+4, 4+4, 두 제도 혼합(학사입학 병행 의과대학 또는 고교 졸업 후 6년제 학석사통합제도 병행 의학전문대학원, 혼합비율 자율적 결정) 중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과 학생이 자신의 여건에 따라 좋은 제도를 이용하면 될 것이고 그런 가운데 점차 가장 좋은 제도를 찾아갈 것이다. 단 같은 대학 내에 같은 내용을 교육하는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이 병존하는 기현상은 일시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수 인력이 젊은 시절에 불필요하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하고 교육제도 왜곡을 유도하는 정부의 대학정책은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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