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는 시인 김선우

사진 : 나혜진 기자

젊은 여성 시인 김선우.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은 굉장히 추웠다. 따뜻한 실내에서 커피 한 모금을 입 속에 털어 넣은 뒤에야 겨우 인터뷰는 시작됐다.

불과 3일 전 몸살을 앓았음에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목소리도 또랑또랑했다. ‘왜일까?’하는 궁금증을 품던 찰나 ‘아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게 됐다. 그는 1년에 한두 번씩 꼭 앓는 몸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단다. ‘일단 쉬어야 하기에 움직여야 하는 다른 모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몸살은 몸이 ‘제발 쉬어주세요’하는 외침이에요. 몸살의 절실한 외침을 듣는 순간 생의 발걸음을 잠시 늦춰야 해요.” 그에게 고통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 품 깊숙이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다.

김선우는 1996년 「대관령 옛길」라는 시를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로 시작하는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 누구보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익숙한 그이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시를 쓰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대학졸업 당시 사회운동에 몸담았던 동료들이 발빠르게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회의감으로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대학졸업 후 그는 전국의 강천(江川)을 돌아다녔다. 자신의 고통과 깊이 대면한 이후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들을 위로하는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근작으로는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한 할머니의 회고를 시로 옮긴 「열네 살 無子」(『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를 꼽을 수 있다. 이 시를 쓰면서 슬픔이 북받쳐 보름동안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했단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소위 제3세계에 속하는 나라의 아픔도 그의 시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다. 끊이지 않는 분쟁 속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아이들과 여성들을 바라보며 그는 하루빨리 이 세계에 평화가 도래하길 기도한다.

“아픔이 있는 곳에는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다”는 그의 논리는 개발로 인해 처참히 부서진 자연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자동차 연료주입기를 바라보며 바이오연료의 상용화를, 남성의 정자생산력이 줄었다는 소식에 화학약품의 사용억제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부채의식을 지닌 현대인이다.

고통 이외에도 그가 붙들고 있는 주제는 다양하다. 사랑, 공존, 행복……. 이 중 누구나 좋아할 만한 주제는 사랑, 특히 첫사랑이 아닐까. 김선우 시인에게  첫사랑의 느낌을 묻자 “눈 속에 얼어 있는 빠알간, 아주 예쁜, 그렇지만 엄청 차가운 산수유 열매를 따서 입술에 넣는 느낌”이라고  묘사한다.

사랑이 주는 설렘만큼이나 이별이 주는 고통도 크지 않을까. 김선우 시인은 이별을 겪었거나 혹은 겪을 이들을 향해 한마디를 던진다. ‘쿨(cool)한 척’하지 말라고. “마음이 다하는 데까지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에 마음 아파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는 그의 물음은 경박한 사랑이 쿨한 사랑으로 찬미되는 시대에 어깃장을 놓는다. 깊이 아파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아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는 것일까.


 

사진 : 나혜진 기자

 

 


케이크 한 조각을 한 입 베어 먹는다. 그는 항상 비교하고 최고의 것을 가려내는 일에 익숙한 우리의 문화가 안타까웠나 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넌 이게 좋아, 아니면 저게 좋아?’와 같은 선택형 질문,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건 뭐야?’와 같은 최상급 질문에 익숙해요.” 그는 “모든 것이 다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인식을 되새겨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 의견이 무조건 옳아’ 혹은 ‘나만이 구국열사’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현실정치판도 비교급과 최상급의 언어에 익숙한 사회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는 “모두들 ‘너도 옳고 나도 옳다’고 인정하는 배려심을 발휘해야 한다”며 “이러한 배려는 여유를 가질 때에만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여유를 얻는 쉽고도 유일한 방법은 문학과 예술을 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문학과 예술이 생존게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한낱 흥밋거리로 떨어진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란다.

3월에는 편지글 모음집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7월에는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8월에는 칼럼집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10월에는 추천시 모음집 『우리, 사랑할래요?』를 각각 펴낸 김선우 시인. 등단 10년째인 올 한 해만 4권의 책을 출간했다. 특히 세 번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는 그만의 성(性)적 상상력을 인정받으며 지난 19일 제9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는 세 번째 시집에 대해 “지난번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이후 또다시 내 속의 시상(詩想)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냈다”고 말했다. “당분간 한국을 떠나 인도 등을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며 “네 번째 시집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색다른 분위기로 꾸며질 것 같다”고 말하는 투명한 영혼의 소유자 김선우. 그와의 만남 덕분인지 첫눈을 맞으며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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